지난달 11일 충주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에서는 농담진담 ‘고된 농사, 더 고된 기록’에 대한 대담이 진행됐다. 유병덕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장과 임석호 에코리더스인증원 대표가 진행한 기록에 관한 이야기, 농담진담에서 나온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유병덕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 소장(이하 유)

오늘 이 자리는 기록에 대한 이야기이다. 농부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기록과 인증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임석호 에코리더스인증원 대표(이하 임)

예전 인증 심사원으로 일할 때 현장에서 70세가 넘는 한 농부를 만났다. 본인 이름을 쓰고 주소를 쓰는 것도 힘들어 하신 농부님에게 그 당시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준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2009년에는 인증심사시 영농일지 부문을 까다롭지 않았지만 2013년부터 법이 강화되어 10페이지에 달하는 생산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영농일지 부문도 심사원들이 꼼꼼히 보기 시작했으며, 이런 상황이 매우 답답했다. 농업대학을 졸업한 청년에게 생산계획서와 영농일지 작성을 시켜 보았지만, 이 부문도 힘들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유 : 현재의 생산계획서 상의 불필요한 부분이 많은가?

임 : 생산계획서상에 구매한 화학비료, 사용한 화학비료를 다 기록해야 한다. 과연 이러한 부분이 현실적으로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이런 부분이 농부를 괴롭히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어려운 점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유 : 기록을 잘하고,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인지, 이렇게 세세히 기록을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영농일지를 간략하게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불필요한 기록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 : 오늘 제목이 ‘고된 농사, 더 고된 기록’인데 오늘의 핵심 주제라 생각한다.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IFOAM 심사원 시절 평가사에게 감사를 받은 적이 있다. 외국 평가사로 오신 분이 입회해서 심사를 보고, 기록물을 관찰 한 후 마지막으로 한 말이 ‘Amazing’이란 단어였다. “한국 농부들은 일도 많고, 힘든데 어떻게 이렇게 빽빽하게 기록을 하느냐”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독일 심사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평생 그 지역에서 유기농을 실천해온 70세 여성농민에게 기록을 보여달라고 하니, 주위 농부들이 “이 사람 자체가 유기농이다.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유기농을 시작했고, 이 농부가 우리 지역 유기농의 증거이다. 이 분의 토양을 살펴봐라. 자연 생태계가 살아있는 유기농 그자체이다”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를 한 것이다.

유 : 유럽에서도 독일하면 유기농 선진국이다.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유기농 강국 독일에서도 기록에 집착하지 않는다. 기록 외에도 다른 것으로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농민들에게 과도하게 기록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럼 다시 어떤 부분의 기록이 과도한 것인가?

임: 생산계획서 상의 비료에 대한 기록은 과도하다기 보다는 다른 방식을 택해야 한다. 농가들은 대부분 기록을 서술식으로 기록한다. 농관원 교육에서 제시한 영농일지의 경우 일기 쓰듯이 빽빽한 내용이 들어 있다.

대부분의 농가가 뭘 작성해야 하는 지 정확히 모른다. 영농일지 기록은 4가지로 구성된다. 파종, 수확과 출하, 친환경자재 사용, 화학비료와 농약 구매 사용이다. 여기서 화학비료와 농약은 유기농가에 해당사항이 없지만 대부분의 친환경인증 농민들이 유기농, 무농약, 관행농 이렇게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기록을 줄이기 위해서는 화학비료나 농약의 구매내역서를 이용하면 된다. 일일이 기록하고, 적는 것이 아니라 구매내역서를 첨부하면 된다.

단계적으로 기록을 간소화 하기 위해서는 우선 1단계로 일기 수준의 기록을 표를 이용해 작성을 하는 것이다. 이것만 보면 2년치의 기록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미국의 국가 유기인증 프로그램인 (NOP, National Organic Program)을 보면 표의 형식으로 기록을 하는 양식들이 준비되어 있다.

유 : 불필요한 기록을 줄이자는 노력은 공감하고 있다. 만약 생산계획서를 폐지한다면 어떨까?

임 : 인증이라는 것에 기록은 필요하다. 어떤 필지에서 어떤 품목을 어떤 시스템에서 생산하느냐. 본인의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어떤 형식이라도 일종의 기록은 필요하다.

유 : 개인적으로는 정말 최소의 기록, 즉 필지, 이름, 품목 정도만 적고 나머지는 적지 않아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심사 방법론에 달려있다고 본다. 노련한 심사원의 경우 아주 자세한 기록이 없어도 인증을 심사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던 자재의 사용부문은 구매 내역서로, 출하의 부문은 판매 내역서 등을 활용하면 가능하다. 무슨 자재를 어디에 얼마나 사용했고, 세세한 기록은 생산자들에게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농민들은 구매했던 영수증을 모아두는 정도, 즉 투입물질 구매 영수증, 판매영수증, 제고기록 등만 가지고 있고, 노련한 심사원들이 이를 증거로 인증을 파악하면 된다. 현재 생산자들은 일기를 쓰듯이, 여백 없이 디테일한 기록을 요구 받고 있다. 디테일한 기록의 경우에도 데이터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검색을 해서 내가 필요한 정보를 찾아야 하는데, 수기로 일기 형식으로 작성한 기록은 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인증기관과 관에서는 앞으로 기록의 평가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영농일지, 생산계획서는 농민관점이 아니라 행정의 입장에서 한 것이다.

임 : 공감하는 내용이다. 구매내역에 대한 기록, 판매내역에 대한 기록은 영수증으로 가늠할 수 있다. 1단계, 2단계로 나눠서 기록을 간소화 해야 한다. 우선 1단계 양식은 NOP 형식으로 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25개의 기록 양식이 있다. 하지만 NOP에서는 이런 기록을 강제하지 않는 것이 포인트이다. 농민들이 필요하면 가져다 쓰고, 필요 없으면 다른 방식으로 입증하면 된다. 우리도 일단 양식을 만들어 놓고, 구매내역 등은 영수증으로 대처하면 된다.

또한 화학비료의 1/3 기준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농약에서 화학비료의 1/3 이하의 사용은 무엇을 뜻하는가? 바로 화학비료를 줄이고 유기물을 늘리라는 뜻이다. 꼭 화학비료를 1/3 수치로 계산해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화학비료를 차츰 줄이라는 뜻이다. 친환경농업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독일에서 인증을 했을 때 농민들이 “농약을 사용하는 것은 자해를 하는 것이다. 완벽한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는데, 이것을 일부러 망가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심사원들이 농업환경평가를 해서 이걸로 위험도를 평가해야 한다.

견월망지(見月忘指)라는 말이 있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본다는 것이다. 영농일지, 시비처방서, 분석성적서, 생산계획서 모두 유기농을 제대로 하는지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핵심은 농가 현장에 있다. 어느 소비자를 데리고 와서 봐도 이건 유기농으로 의심할 필요가 없는 농장은 이를 입증하기 위한 자료가 부족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입증에 대한 기록이 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법이 바뀌기 전까지 농가들의 기록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유 : 현장에 집중해야 한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식생, 인증심사원의 전문적인 식견으로 현장에서 파악하면 기록의 문제를 줄일 수 있다. 농업환경평가를 중요시 해야 한다. 기록은 최소화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법과 규정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임 : 1단계는 양식을 최소화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기록하는 것이고, 2단계는 법을 바꿔서 농업환경평가를 강화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작물의 뿌리를 뽑아보면 화학비료만 사용한 곳과 유기농으로 재배한 곳의 뿌리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심사 기법의 선진화, 전문화가 필요하다.

유 : 다른 외국의 인증과 기록에 대한 방법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NOP도 큰 차이는 없다. 합리적으로 우리 실정에 맞는 기록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만큼 농민들의 입장에서 최소화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 김경호 · 이경민 · 김경윤 · 엄정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