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유기농실천 농민단체인 정농회. 신임 주형로 정농회장은 혁신을 통해 정농회가 새롭게 변화할 것이라 강조한다. 농업의 교육적 가치 확립과 실천으로 변화하는 정농회. 주형로 회장이 그리는 정농회의 모습을 들어보았다.

Q. 정농회 회장으로 취임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정농회를 이끌어갈 청사진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자연의 순환원리와 노동력만으로 농사를 짓는 유기농업이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74년, 40여 년전 정농회의 창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 당시 시장에 농산물을 내놓으면 벌레 먹어 볼품없는 작물이라고 취급받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벌레도 못 먹는 걸 사람에게 먹일 수 없다는 신념으로 이 땅의 유기농민들은 바른 농업의 길을 고집하고 고된 노동을 견뎌 냈습니다. 앞으로 정농회에서는 국내 유기농업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교육을 통해 우리농업의 문제를 풀어갈 것입니다. 그동안 기술과 생산 위주의 농업을 지속했다면, 앞으로의 농업은 교육과 함께 가야 합니다.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탈피해 정도를 걷는 바른 생산을 실시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새로운 교육기관, 즉 학교를 만들려고 합니다. 가칭 정농생활학교를 만들어 유기농 후계 농업인들을 교육 시키려 합니다. 지금은 농업 후계자들이 많지 않으며, 농업 전문교육기관도 부족합니다. 정농생활학교에서는 정말로 철저히 유기농사꾼을 만드는 커리큘럼을 준비할 것입니다. 교육과정도 생활영어, 생활수학, 생활국어 같은 기초 학문에서부터 미장, 목공, 용접, 미생물 발효, 문화 등의 다양한 교육을 실시할 것입니다.

앞으로 정농회는 모든 친환경농업단체에 도움을 주는 단체로 변화할 것입니다. 정농회의 정신을 이어 받아 각 단체들에게 필요한 교육 및 지원을 담당하는 유기농업 분야의 으뜸 도우미가 될 것입니다.

국내 유기농업의 정신적인 대들보였던 정농회는 집 없는 달팽이였습니다. 어렵게 유기농업을 하는 뜻있는 농민들이 모였기 때문에 가난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는 국내 유기농업의 시발점이 된 이곳 홍성에서 정농회의 본부를 만들 예정입니다.

Q. 소비자들의 불신이 높아만 가는데..

A. 고등학교 2학년 때 정농회를 가입을 하고 이듬해 졸업 후 본격적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증산의 시대였기 때문에 수확량이 적은 유기농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선과 시련을 견디며 정농회에 몸을 담은지 올해로 38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이지만, 나이에 비해 아직도 개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혁신이라는 말을 무척 좋아합니다. 혁신이라는 말은 가죽을 벗긴다는 뜻입니다. 아파야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아프지 않으면 새롭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최근 한 방송국에서 친환경농업의 허실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다는 소식에 친환경농업인들과 유통인들은 바짝 긴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농약 안 쳤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느냐며 의문을 표하던 소비자들의 불신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신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혁신이 필요합니다. 아프고 어려운 길이지만 친환경농업인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친환경·유기농업이 소비자의 신뢰를 받고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중간발문: 10명의 유기농업인보다는 100명의 무농약 농업인이 친환경·유기농업의 대중화에 고마운 존재가 될 수 있다>

Q. 앞선 질문과 이어지는데 인증의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A. 지금까지 친환경농산물 인증부문에 대해서는 많은 말들이 있었습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인증을 받지 못하면 다른 기관에 가서 인증을 받는다’는 등의 말들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친환경농산물 인증은 국가에서 내주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인증은 품관원에서 하는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검사만큼은 정부가 나서서 동일한 기관에서 실시해야 하며, 이러한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민간인증기관의 경우 대행기관으로 인증에 필요한 서류와 그에 대한 준비를 담당하고 마지막 검사의 경우 국가에서 담당한다면 소비자들의 신뢰도 돌아올 것입니다.

또한 인증의 경우 유기농 1년차, 3년차 등 각각의 연차를 표기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할 경우 농가의 경우 유기농업을 오랫동안 실천했다고 하는 자부심도 생길 것이고, 가격 프리미엄도 설정이 되어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Win-Win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현재 친환경농산물 인증, 특히 유기농인증 농가들의 증가는 답보상태에 있습니다. 국가의 정책도 유기농업에 타킷을 맞추고 있지만 유기농의 확산을 위해서는 무농약을 대중화시켜야 합니다. 무농약이라는 발판 없는 유기농업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작물의 경우에도 건강한 토양에 튼튼한 뿌리 없이는 좋은 열매가 나올 수 없듯이 무농약 농가들 적극 육성해 유기농의 길까지 이어지게 해야 합니다. 10명의 유기농가보다 100명의 무농약 농가가 친환경시장을 더욱 활성화 시킬 수 있습니다. 무농약이라는 중간지대가 없는 유기농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Q. 다양한 친환경농법에 대한 회장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A. 작물이 다양한 것처럼, 친환경농법도 매우 무궁무진합니다. 선진지 견학관계로 일본을 자주 방문하는데 일본에서 무투입 농법을 실천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숲속의 나무를 살펴보면 누구하나 관리하지 않는데 잘 자라지 않습니까? 거름 한 번 투입한 적 없지만 자기 몸에서 떨어진 솔잎 등으로 양분을 다시 얻는 것입니다. 무투입 농법은 이처럼 벼의 경우 볏짚만을 활용해 농사를 짓는 방법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순환이라고 생각합니다.

Q. 농업과 교육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A. 우리교육이 실수한 부분이 있습니다. 절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버렸는데, 그것이 바로 텃밭과 동물농장입니다. 교육의 기본은 중·고등학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에서 나옵니다. 고등교육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지식일 뿐이지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텃밭은 생명의 공간입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 생명이 자라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물은 먹이를 주며 사랑을 하면 순종합니다. 이런 생명과 사랑이 깃든 공간들이 깨어져 버렸으며, 그 결과 학생들에게 병이 생겼습니다. 폭력, 욕설, 무관심 등.

그래서 100개 학교에 텃밭 농장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지저분한 것을 왜 하냐고 했지만 선생님들이 조사한 결과 25%의 학생이 기회만 되면 농촌에서 살고 싶다고 합니다. 또 ‘알고 먹으니까 밥이 맛있어요’라고 하며, 과외 하느냐 바쁜 아이들 왜 붙잡고 그러냐고 했던 학부모들은 ‘내년에도 또 우리 학교로 와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어느 학생은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생각난다’ 눈물을 짓습니다. 이런 학교들 대부분이 폭력 없는 학교, 욕설 없는 학교로 선정이 됐습니다.

작물하나 키운 것이 큰 변화를 낳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왜 도시에서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학생들에게 늘 함께 붙어서 작물을 키워보기를 권합니다. 체험은 한 번 하고 끝이지만, 텃밭과 동물농장의 경우 연간 계속 관심을 갖게 만듭니다. 아이들이 이로써 많이 변화되었고, 이로 인해 교육적 가치를 얻게 되었습니다.

교육과정에서 자연, 실과 등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면서도 말로만 농업을 살리자고 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사람이 먼저 유기농이 되자!>   친환경농업의 완성은 유기농, 무농약이 아닙니다. 서로 손잡고 화합하는 것입니다. 화합과 평화가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인간적 유기농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유기농업을 하기 전에 인간적 유기농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