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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5-18 16:26
천년된 삼나무를 지켜내다
 글쓴이 : 친환경 (58.♡.189.254)
조회 : 2,937  

지구 곳곳에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지켜내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진지한 노력들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들이 왜 몸을 던져 그처럼 치열한 도전에 나섰을까? 그들은 우리에게 인간에게 자연이 주는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10년 전인 1997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의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이라는 스물세 살 난 처녀가 61m 높이의 나무 위로 올라갔다. 벌목 위기에 처한 천년된 삼나무 ‘루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녀는 738일 동안 그 나무 위에서 버텼다.
나무 위로 올라간 지 2년이 지난 99년 12월 천년된 삼나무 ‘루나’를 영구히 보존한다는 공식서류가 작성되고 나서야 그녀는 나무에서 내려왔다. ‘루나’ 주변에는 나무 보호를 위한 6㎡의 영구완충지대가 만들어졌고 천년된 삼나무 ‘루나’는 벌목 위기에서 벗어나 그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위대한 생명의 상징 ‘루나’
 
‘루나’라는 이름의 삼나무는 지난 천년 동안 거센 바람과 맞서 왔고, 수십 차례 이상 일어났을 산불에서도 살아남은 불사조 같은 나무였다. ‘루나’의 윗부분은 번개에 맞아 생긴 시커먼 상처로 온통 뒤덮여 있었지만 그 상처 속에서도 생명을 품어 왔고 면면히 생명력을 이어 갔다. 결국 이 상처투성이 삼나무는 그 자체가 위대한 생명의 상징이었다.
천년의 모진 세월을 꿋꿋이 이겨온 ‘루나’를 지키기 위해 줄리아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루나’를 지키기 위해 나무 위의 60m 높이에 가로 1.8m, 세로 2.4m 크기의 오두막을 짓고 거기서 추위와 공포 그리고 세상의 무관심과 싸웠다.

60m 높이의 나무 위에서 맞는 폭풍우는 끔찍했다. 생존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루나’를 베어 버리려던 목재회사는 나무 바로 위로 헬리콥터를 띄워 강력한 바람과 함께 위압적인 위협도 가했다. 하지만 줄리아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24개월을 나무 위에서 살면서 줄리아의 손과 발에는 마치 ‘루나’의 옹이처럼 굳은살이 박였다. 그리고 동상에 걸렸다 풀렸다를 반복했다. 손가락과 발가락에는 갈색과 초록색 물이 들었다. 갈색 물은 나무껍질 때문이었고, 초록색 물은 이끼 때문이었다. 줄리아는 이처럼 고통을 감내하면서 점점 ‘루나’와 한 몸이 돼 갔다.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루나’를 지킨 줄리아는 본래부터 환경운동가가 아니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내세우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저 어려서부터 자연과 나무, 숲의 소중함을 익히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또한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천년된 삼나무를 지키려고 한 젊은 여성이 2년 가까이 나무 위의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각종 언론이 줄리아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뉴스위크, 피플지 등이 ‘루나’ 위에 살고 있는 줄리아의 이야기를 다뤘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라디오에서도 줄리아와 전화통화하기 위해 애를 썼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의 눈길이었다. 하지만 진심이면 통하고 정심(正心)이면 뚫는다고 하지 않던가. 줄리아의 진심(眞心)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줄리아의 온몸을 던진 호소는 사람들의 무관심을 깨우고 그로 인해 형성된 여론의 압력은 퍼시픽 목재회사로 하여금 ‘루나’를 살리겠다는 공식적 선언을 하도록 이끌었다. 스물세 살 처녀의 목숨 건 노력이 통한 것이다. 결국 줄리아는 자신의 삶을 걸고 천년된 삼나무 ‘루나’를 지켜냈다. ‘루나’에 담긴 생명의 가치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내 삶의 가장 소중한 것을 제대로 지켜내고 있는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있는가. 아니 혹 지금 무엇을 지켜내야 할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 스스로에게 되물어 볼 일이다.
 
루나와 줄리아 한국에서도 탄생하다
 
10년전 ‘루나’를 지킨 줄리아와 같은 젊은이가 우리 대한민국에도 있다.
지난해 12월 인천시 계양산 자락 높이 12m의 소나무 위에서 고공시위를 벌였던 신정은 씨.

나무에 오른 지 57일 만에 그녀가 드디어 땅으로 내려왔다. 그녀가 시위를 벌이고 있는 계양산에 지으려던 골프장이 일단 무산됐기 때문이다.
롯데건설이 신격호 회장 소유의 계양산 자락 73만평에 27홀 규모의 골프장을 짓는 계획에 시민들이 반발하고 나서자 인천시는 이를 반려했다.

나무 위에서의 생활 당시, 주변 나무들이 눈으로 뒤덮여 바람만 불면 눈덩이들이 나무 위 오두막으로 사정없이 떨어져도 밝게 웃었다는 신 씨는 “시민들이 응원도 해주고 함께 호응해주는 바람에 자연을 살리고 골프장 건설을 막아낼 수 있었다”며 공을 시민들에게 돌렸다. 영하 10도가 넘는 강추위에도 나무 위에서 당당히 버텨온 그녀.
대학 졸업 뒤 7년 동안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올해 1월부터 인천녹색연합 활동가를 시작한 신 씨가 홀로 나무 위 시위에 나선 것은 지난해 10월 26일.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작은 계곡에 가재가 사는 강원도의 깊은 산속처럼 아름다운 곳이 골프장 건설로 없어져서는 안 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엄마, 저 보름쯤 산으로 출장가요.”
 
이 한마디만 달랑 남긴 채 집을 나섰고 이 같은 기행(?)을 나중에야 알게 된 어머니와 가족들은 몇 번이나 나무 밑에 찾아가 눈물지었다. 이런 가족들을 보며 신 씨는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녀는 계양산 자락인 목상동 솔밭의 12m 높이 소나무에 대나무로 1.5평의 바닥을 만들고 나무로 지붕을 만들어 1인용 텐트를 쳤다. 나무 위 합판과 천막으로 아슬아슬하게 만든 텐트 속 좁은 공간에서 그녀는 56일 동안 먹고 자기, 명상하기, 책읽기, 구호 외치기, 삼보일배 등 모든 활동을 해결했다.
처음엔 날씨가 나쁘지 않아 그런대로 버틸 만 했다. 그러나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밤새도록 천둥번개가 칠 때는 오두막이 있는 나무위로 번개가 떨어질 까봐 무서워 잠을 설쳤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소리도 두려웠다.
 
내 몸에 솔향기 배었으면
 
그녀가 나무 위에 살면서 ‘계양산 나무 위 소식’이란 제목으로 인천녹색연합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면 자연과 친구가 되는 과정이 나타난다.
“나무 위에 올라와 미소 짓게 만드는 풍경 중의 하나는 솔잎 씨앗이 방그르르 돌며 바람을 타고 빛을 받으며 어딘가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생명이 숨 쉬는 곳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무 위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끈적끈적한 송진이 몸에 배어났고, 시간이 지나면서 끈끈함은 사리지고 소나무 향기만 났다.
“아주 어릴 적에는 시골 다락방 냄새가 좋아 다락방에 있으면 내 몸에 다락방 냄새가 밸 것 같아 다락방에 나오지 않으려 한 적도 있었다. 이 시위가 끝나고 내려가면 내 몸에서 솔향기가 배었으면 좋겠다.”
 
그녀에 이어서 윤인중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평화교회)도 나무 위 시위에 돌입했다. 윤 목사의 소나무 일기(2007년 2월 2일) 한 편을 보자.

“금요일이면 ‘나무 위 시위’가 꼭 100일 째 되는 날이다. 마침 그 날이 음력으로 동짓달 보름이 된다. 정월 대보름이 제일 밝다고는 하지만 요즈음 달 보는 맛이 재미를 더한다. 샛노란 달이다. 햇빛이 나기 시작하면 어둠은 쓰윽 물러나고 마는데, 달빛은 어둠과 사이가 좋다. 검은 숲 사이로 달이 뜨면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인 것이다.
여기 아니면 언제 이런 달구경, 바람맞이, 숲의 적막을 맛보겠는가 싶다. 실컷, 흠뻑 보고, 마시고, 느낀다. 소나무 숲이 주는 신선한 기운과 내음에 점점 물들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따스하고 평안하다. ‘기쁨이 열리는 숲’이다.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게 하고 굳은 어깨를 적당히 푸는 중이다.”

작성자 : 윤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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