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가는 1달러짜리 싸구려 펜으로도 위대한 시를 쓸 수 있죠.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은 마음으로 찍는 거죠. 도구가 아니라 사진을 찍는 이의 관찰과 통찰력,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노란창의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잡지. 올해로 125년을 맞이한 전통의 이 잡지는 넓은 세계의 탐험과 발견 그리고 미지의 세계와 놀라운 이야기들을 풍부한 사진과 함께 전해준다.

나도 정기구독을 했던 이 잡지의 기사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샤르밧 굴라(Sharbat Gula)’라는 소녀 이야기다. 이 잡지의 1985년 6월호 표지모델은 파키스탄 난민 캠프에서 찍은 초록색 눈을 가진 12살 정도의 소녀였다. 특히 호수와도 같이 깊은 눈은 보는 사람 모두가 빠져 들어갈 것만 같았다.

1984년 소련의 침공으로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의 난민기사를 취재하러 파키스탄의 한 난민촌을 찾아간 종군 사진기자 스티브 매커리. 그는 난민촌의 어느 학교 천막 안으로 들어갔을 때 수줍어하는 한 어린 소녀를 만났다. 남루한 누더기를 걸친 채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하던 소녀.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읽어 내다

“나는 그 사진이 그날 찍은 다른 사진들과 특별히 다를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아프간 난민들의 어려움과 시련에 관해 취재하던 스티브 매커리가 찍은 이 소녀 사진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강렬한 이미지로 꼽히게 되었고 내셔널지오그래픽 표지사진으로 장식되었다.

그 소녀의 눈은 누가 보더라도 비밀스런 구석이 있었다. 형언할 수없는 신비스럽고 공포심이 담긴 슬픈 눈빛으로 소련과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난민들이 처한 현실을 과장되지 않고 은유적으로 보여준다고 한다.

그녀의 눈동자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하면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고, 우리는 그녀의 눈 속에서 전쟁으로 황폐해진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읽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프간 소녀’로만 알려졌을 뿐 17년 동안 아무도 그 소녀의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잡지사엔 그 사진을 보고 그 소녀의 이름과 행방을 묻거나 자극을 받아 난민촌에서 자원봉사나 구호활동을 시작하였거나 앞으로 계획이라는 독자들의 편지가 쏟아졌다.

그 사진은 내셔널지오그래픽 125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진 중의 하나가 되었다.

모든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녀가 살아있을 가능성, 그녀를 찾아낼 가능성, 그녀가 엄청난 상실감을 견뎌냈을 가능성, 하지만 잡지팀은 다시 도전했다.

17년 후인 2002년 1월 내셔널지오그래픽 취재팀과 스티브 매커리는 아직도 정세가 불안한 아프카니스탄을 다시 찾아 간 것이다. 아프간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었다. 침공, 저항, 또 다른 침공의 악순환. 난민촌 사람들의 수소문과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파키스탄 국경 산악지역으로 피난하여 살고 있는 그녀를 찾아냈다. 차로 6시간을 달린 후 3시간을 걸어 수많은 인명의 목숨을 앗아간 국경을 통과해 그녀와 재회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샤르바트 굴라이며, 전쟁을 해야만 평안을 느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호전적인 파슌툰족이었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된 굴라는 자신의 나이를 몰랐다. 오랜 세월과 고단한 삶의 역정이 젊음을 앗아갔지만 그녀의 이글거리는 눈빛만은 여전했다고 한다.

그녀는 그 유명해진 소녀시절의 자기 사진을 본 적이 있을까? 그녀는 쉽게 답했다. “없어요.” 그녀는 자신의 사진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고 인류애에 대한 영감을 갖게 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푸른 눈의 위대한 힘을 알지 못했다.

그 엄청난 고난과 역경 속에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물었을 때 그녀는 흔들림 없이 확신에 찬 음성으로 대답했다고 한다.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고.

그녀는 부르카(결혼한 여자가 필수적으로 두르는)를 두른 채 두 번째 사진 촬영을 하였고 이 사진은 내셔널지오그래픽 표지로 다시 장식되었다. 두 차례에 걸쳐 표지인물이 된 셈이다. 여기까지가 그 소녀 이야기이다.

이러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기에 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지구의 아름다움과 동식물의 경이로움 뿐만 아니라 통찰력마저 가득해 생에 대한 영감과 활력을 얻곤 하기 때문이다.

17년 간의 시차를 둔 소녀의 이야기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이 세상이 경이로웠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3개월 후, 내셔널지오그래픽 작은 단신 화보를 보고 또 다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번엔 가슴이 울리는 전율까지 느꼈다.

‘꽃으로 만든 그때 그 소녀’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네덜란드 4월 꽃의 날 모자이크 경연대회에서 한 노부부가 만든 꽃 장식이 우승을 했다. 그 아프간 소녀 굴라의 이야기를 꽃으로 장식하여 표현한 대형 작품이었다. 안드레와 아니타라는 네덜란드 노부부가 만든 이 작품은 가로 2.5m, 세로 2m 크기의 모자이크로 오로지 히아신스 꽃만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작품을 완성하는데 무려 5만 송이나 되는 히아신스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작품에는 히아신스 꽃송이뿐만 아니라 잎과 줄기도 사용했는데 어린 굴라의 머리카락을 표현하는데 사용한 것은 바로 히아신스의 잎이었다. 조금씩 다른 색깔을 표현하기 위해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이들 노부부가 아프간 소녀 굴라를 소재로 택한 이유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녀의 표정뿐만 아니라 그녀가 겪어온 사연 때문이었다. 아니타는 자신의 많은 주위 사람들이 굴라의 삶에 감동을 받았다고 전한다.

“작품 옆에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적어서 붙여 놓았지요.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은 그걸 읽고 소름이 끼쳤다고 하더군요.” 세계의 독자들은 아프간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진동’에 충분히 교감한 것에 틀림없었다. 이들 노부부가 예술혼이 담긴 커다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고되고 힘들었겠지만 그 과정은 행복했을 게 틀림없다.

사진의 힘, 관찰과 통찰력 그리고 이야기

큰 감동이었다. 잡지인으로서 잡지의 커다란 힘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잡지라는 매체를 통해 세계인들이 공감을 하고 소통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잡지는 인간적인 매체이자 진실을 전달하는 도구였다.

지구 반대편(미국-네덜란드)의 독자까지 마음을 움직이게 한 거짓 없는 다큐멘터리, 삶의 현장 그리고 경이로움과 감동의 확산이자, 기적의 연속이었다. 잡지사와 독자가 이렇게 영혼의 소통을 한 것이다. 이것은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한번 찍어주거나, 블로그에서 ‘공감하기’를 한번 눌러주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영혼의 순간을 잡아낸다는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는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작가는 1달러짜리 싸구려 펜으로도 위대한 시를 쓸 수 있죠.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은 마음으로 찍는 거죠. 도구가 아니라 사진을 찍는 이의 관찰과 통찰력,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마법의 양탄자, 진실한 스토리의 힘

여행도, 모험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탐닉할 수 있는 기회도 허락되지 않는 조용한 집이나 직장에 얽매인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잡지’는 우리를 머나먼 세상으로 데려다 줄 마법의 양탄자이다. 우리는 잡지를 통해 용감무쌍한 고고학자 인디애나 존스가 되기도 하고, 비밀첩보원 007 제임스 본드가 되기도 하며, 어떨 때는 로빈슨 크루소나 제인구달이 되기도 한다.

한 권 잡지의 힘, 한 장 사진의 힘, 하나의 진실한 스토리의 힘은 이처럼 매우 크다. 특히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여러분이 선택해 주신 ‘월간 친환경’도 독자 여러분께 갓 구운 빵처럼 마음을 설레고 따뜻하게 해주는 작은 선물이 되길 기대해 본다.

▣ 사진 :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