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동물 사이에서 먼 옛날부터 벌어진 극적인 드라마가 최근 밝혀졌다. 아프리카 남부의 기린과 아카시아 사이에서 벌어진 기나긴 투쟁사이다. 아마 수백만전 전부터 그래왔을 것이다.

얼룩말, 가젤, 누들이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서 초원에 난 풀들을 모조리 먹어치우기 때문에 기린들은 경쟁을 피해 나무 위층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목이 길어서 키가 5.8m에 달하니 나무 꼭대기에 달린 잎도 먹을 수 있었다.

우리가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J.라마르크의 <용불용설> *주1) 기억이 새롭다. 높은 곳에 있는 잎을 먹으려고 서로 노력하다보니 목이 점차 길어졌고, 목이 긴 녀석들이 먹이를 확보하는데 유리한 입장이니 경쟁과 진화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 여기까지는 우리가 배운 그대로다. 대응 그리고 반격, 물리전 그리고 화학전 아카시아의 첫 번째 반격은 단단한 가시였다.

나뭇잎 사이에 5cm에 이르는 길고 뾰족한 가시를 내보냈다. 이에 대해 기린은 두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우선 혀와 목구멍, 식도, 위벽을 가죽으로 코팅하여 가시에 찔릴 위험에서 해방되었다. 둘째, 기린은 나뭇가지를 절대로 길게 입에 넣지 않고 아래턱을 옆으로 움직이며 부드러운 잎사귀와 가시줄기를 모두 입에 넣어 먹는다.

그러니까 가시도 날카로운 부분이 아니라 옆을 건드리게 되어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또 입 끝으로 가시 사이에 난 나뭇잎들을 쉽게 뜯어 먹을 수 있다. 이에 대응하여 아카시아는 또 다시 매우 효과적인 수단을 개발했다. 기린이 아카시아를 먹기 시작하면 아카시아는 5~10분 내에 다량 섭취할 때 치명적인 효과를 내는 독을 잎에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레토리아대학 동물학자 오터 반 호벤은 이것이 신맛의 타닌임을 발견했다.

기린, 다른 나무로 이동하다

기린이 타닌을 섭취하면 점차 구역질이 나서 식사를 멈추게 되는데 제때에 멈추면 독에 치명적이지 않다고. 하지만 아카시아 독은 1990년 여름 남아프리카공화국 트란스발 지방에 엄청난 재앙을 가져왔다. 이 지역 농부들이 사육하던 레서쿠두 3,000마리가 가뭄이 계속되어 초원에 풀이 모자라자 아카시아 잎을 먹기 시작했고 모두 고통스럽게 죽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초원을 방랑하는 기린들은 아카시아 독에 대응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한 나무에서 5~10분 이상 먹지 않고 쓴맛이 느껴지면 즉시 다른 나무로 이동하는 방법이었다. 결국 기린이 승리자가 된 듯 했다. 하지만 전투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카시아는 이제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기린의 잔머리에 고도의 화학전으로 대응했다. 나뭇잎을 뜯어 먹힌 아카시아는 스스로 독을 만들 뿐만 아니라 동시에 주위에 경고의 향기를 내뿜기 시작한 것이다. “애앵 애앵…, 경보사이렌! 가까운 곳에 적이 나타났다.

기린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너희도 빨리 독을 생산해라” 아카시아 서로 소통하다. 이타적 커뮤니케이션 신호를 받은 주위의 아카시아들은 즉시 이 경고에 따른다. 아카시아는 고도로 예민한 미모사류에 속한 식물이었던 것이다.
사방 50m의 나무들이 바람의 도움을 받아 경고 향기를 수신하고 그로부터 5~10분 내에 독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런 아카시아들은 기린에게 단 1분의 식사도 허용하지 않는다. 기린은 도착하자마자 쓴 잎을 맛보며 또 다른 나무로 이동해야 하고 아카시아는 자신의 초록색 외투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게 된다.

아카시아의 다른 동료를 위한 이타적(利他的)인 행동은 참으로 놀랍다. 자신은 적에게 먹히더라도 이웃의 안전을 위해 신호와 경고를 보낼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식물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은 가히 초감각적이고 오히려 동물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자! 여기서 당신이 기린이라면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그렇다. 아카시아 잎이 쓴 맛을 내기 시작하면 아무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등진 방향으로, 그리고 경고를 미처 받지 못한 나무들에게로 이동한다. 또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적어도 50m 이상 이동하여 향기 경고권을 넘어가서 식사를 한다. 이 정도에서 기린과 아카시아의 오랜 투쟁사, 전쟁과 평화 이야기는 끝났을까? 개미를 전투에 끌어들이다 기린의 공격을 다른 식으로 피해가는 아카시아가 생겼다.

그들은 가시마다 속이 빈 조그만 혹을 자라게 한다. 혹에 있는 작은 구멍은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아카시아꽃이 꿀향기를 내뿜으며 개미떼를 유혹한다. 개미들에게는 가시에 있는 작은 구멍이 집으로 안성맞춤이다. 여기에 둥지를 튼 개미들은 온갖 종류의 채식주의자들, 잎을 갉아 먹는 애벌레나 기린을 비롯한 채식동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는 파수꾼이 된다. 특히 기린은 가시나 독보다 개미를 싫어하므로 개미가 있는 나무는 피해간다.

최근 세렝게티 북부초원에는 개미아카시아 면적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식물은 이렇게 영리한 계책과 상상을 뛰어 넘는 감각으로 채식주의자들의 횡포에 대응하고 있다. 아카시아의 경우 적을 퇴치하기 위해 물리전(가시), 화학전(독)에 이어 생물학전(개미) 까지 동원하는 모습을 보면 생존을 위한 투쟁이 마치 소설과 같다.

물론 기린과 아카시아의 투쟁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째깍 째깍”, 세계환경시계 9시 33분 세계 환경시계가 1992년 조사 이래 가장 위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재단과 일본의 아사히 그라스재단은 지난 9월 전 세계 환경오염에 따른 위기 정도를 나타내는 ‘환경위기시계’*주2)의 현재 시간을 9시 33분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해가 갈수록 인류 생존이 불가능한 마지막 시간인 12시에 급격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환경시계가 빨라지고 있는 주된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지목했다. 이외에 물 부족과 식량문제도 주요하게 꼽았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까? 이에 우리는 어떻게 진화해야 할까? ‘어린이의 16%가 천식을 앓고 있고, 초등학생 4명 중 하나가 아토피환자다.’ 내 가족이 그렇고 내 이웃이 그렇다.

지구환경을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는 인간은 언제 이를 깨닫고 멈출 수 있을까? 나는 희망을 갖는다. 인간의 욕망이 어느 선에 가서는 빛나는 도덕심을 발휘하여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갖게 되리라고… 기린과 아카시아의 오래된 투쟁 속에서도 서로 생존할 수 있는 불가침 선을 만들었듯이 말이다.

참조 : 독일 동물학자 Vitus B. Droscher ‘하이에나는 우유배달부’ 주1) 용불용설 [用不用說, use and disuse theory] 생물에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있어,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퇴화하여 없어지게 된다는 학설로 J.라마르크가 제창한 진화설이다.

그는 <동물철학>(1809년)의 제1법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떤 동물의 어떤 기관이라도 다른 기관보다 자주 쓰거나 계속해서 쓰게 되면 그 기관은 점점 강해지고 또한 크기도 더해간다” 이와 같은 현상이 새로운 종(種)의 진화 원인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주2) 환경위기시계 환경위기시계는 지구환경 파괴에 따른 환경전문가들이 리우환경회의가 열린 1992년부터 전 세계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비정부기구(NGO), 학계, 기업 등의 환경전문가에게 설문을 실시하여 이를 발표해 왔다.

작성자 : 윤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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