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富)의 미래, 농부(農富)의 미래

 

빌, 피터, 앨빈… 우리에게 친근한 서양소년들의 이름처럼 보인다. 경영컨설팅기업 액센추어는 이 세 사람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꼽았다. 빌 게이츠, 피터 드러커, 앨빈 토플러.


세계 최고의 부자이면서도 세계인에게 존경받는 빌 게이츠는 최근 뒤늦은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불평등을 줄이자”는 명연설로 여전히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던 피터 드러커는 지난 2005년 향년 96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는 나의 30대를 흔들어 놓은 장본인이다. 그가 생전에 방한했을 때 한번 못 가보았던 것이 아직도 못내 아쉽다. 


앨빈 토플러, 그가 쓴 <제3의 물결> <권력의 이동>은 20대의 나를 뒤 흔들었던 책이다. 읽고 또 읽었다. 그의 존재는 내게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지난주 20대 나의 전설이 한국에 왔고 나는 일요일에 코엑스며 서강대학교를 전전했다. 10만 달러에 달한다는 그의 특강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살아생전의 그의 모습을 내 머리에 기억시키고 싶기 때문이었다.
강의실에서 나는 그를 가까이서 보아야 한다는 욕심이 넘쳐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79세의 앨빈 토플러는 부인 하이디 토플러 여사와 동행하여왔는데 놀랍게도 맑고 왕성한 목소리에 빛나는 청년의 눈빛을 갖고 있었다. 
     
속도의 충돌. ‘빨리 빨리’ 문화의 경쟁력

 

앨빈 토플러는 현재 사회에서 속도의 충돌이 많은 갈등을 야기시킨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주요 경제대국 중심으로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위기는 비동시화 효과로 시간을 생각 없이 다뤄서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최근 9.11테러 및 태풍 카트리나의 재앙은 주요 기관들이 지식경제가 요구하는 가속도에 동시화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경제를 뒷받침 하는 사회질서가 와해된다면 당연히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는가?


이에 대해 토플러는 고속도로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선두기업은 100km, 시민단체나 NGO는 90km로 고속도로를 씽씽 달린다. 가족·가정은 60km, 정부 관료는 25km로 달리는데 학교·교육은 10km, 정치조직은 3km, 법과 법률기관은 1km로 기어간다. 서로 다른 속도는 결국 충돌로 이어진다. 한 쪽에서 아무리 서둘러도 동시화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원활한 결과를 얻어내기가 힘들어 사회 위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점은 ‘생각의 속도’라는 저서에서 빌 게이츠도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이른바 속도론의 중요성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를 구하려던 한 외국인이 부동산 중개업자와 물건을 보러갔다. 너무 빨리 걸어가기에 천천히 가자고 말하자 중개업자는 “천천히요? 왜? 당신이 저보다 다리가 길잖아요. 우리는 서둘러야 해요. 여기는 서울이라고요. 무엇이든 빨라요. 빠른 것이 최고죠.”라고 말했다고. 비즈니스위크는 “한국인은 참을성이 부족하다. 신속한 보상이 그들을 지배한다.”라고 보도했다. 하버드대학교 한국학 연구소는 동시대 한국인에 대한 핵심요소를 ‘속도에 대한 민감성’이라고 언급했다.


토플러는 한국인의 이른바 ‘빨리 빨리’ 문화는 속도가 중요한 시대에 커다란 강점이자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부문별로 충돌 없이 함께 속도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소비하며 생산한다! 프로슈머와 그린슈머

 

우리 가족은 집 근처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는데, 중학생 딸아이가 대뜸 “아빠! 우리는 농산물 생산자인가요, 소비자인가요?” 하고 묻는다. 사실, 우린 소비자만도 아니고 생산자만도 아니었다.
채소를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을 대신하여 직접 텃밭을 가꾸어 식탁을 꾸미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소비자의 생산활동 참여인 셈이다. 토플러는 이처럼 생산(PROduce)하면서 동시에 소비(cunSUME)하는 행위(-ing)를 프로슈밍(Prosuming)이라고 신조어를 만들었다.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거나 꾸미기(DIY), 엄마표 과자를 만들어 주는 주부, 각종 자원봉사자들, 수많은 비영리단체의 활동들도 모두 프로슈밍 경제에 속한다.


일반적인 화폐경제의 이면에 측정되지 않는 숨은 경제를 프로슈머 경제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프로슈밍은 가난한 나라보다는 부유한 나라의 부유한 사람들의 경향이다.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이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슈머 경제는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경제대국에서는 프로슈밍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이고 이는 자신의 집 창고가 다양해지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시장이 나타나고 더불어 많은 시장이 사라지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한편 프로슈머(Prosumer)에서 새로 파생된 신조어 그린슈머(Greensumer)는 자연(Green)과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유기농 선호하고 친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현대인들이 꿈꾸는 친환경적인 삶, 올가닉 라이프스타일은 이러한 프로슈밍 경제 그리고 그린슈머와 맥을 같이 한다. 돈을 대가로 바라지 않고 기꺼이 자신이 좋아서 하는 행동을 기본으로 한다는 면에서 크게 주목할 만하다.


토플러는 혁명적인 부(富)의 이동, 부(富)의 미래는 프로슈머 부문의 급격한 변화라는 역사적인 전환점과 같이 놓여 있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확대 해석해보면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은 부(富)의 이동과정에서 중요한 핵심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생활해왔던 행동을 이처럼 새롭게 구체적으로 개념화하는 토플러의 능력에 나는 놀라곤 한다. 젊은 시절 내가 토플러의 글에 빠져들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매력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79세의 노익장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혜안은 여전했다. 아니 더욱 현인(賢人)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책읽는 기계’라고 칭하였다.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도 그는 넘쳐나는 현대사회의 ‘쓰레기 정보’에 대한 우려도 함께 지적했다. 쓰레기 지식을 버려야 부(富)를 얻을 수 있다고도 역설했다.


그의 창조적인 지적 활동과 그 결과물들은 우리들에게 ‘보이지 않는 손’이 되기도 한다. 그의 책을 읽으며 독자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되고 자신의 생활태도나 라이프스타일에 반영하곤 하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답게 토플러는 나와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지식기반의 농부(農夫), 부(富)를 얻다 

 

부(富)의 미래를 예견한 앨빈 토플러.


그러면 대한민국 농부(農夫)의 미래는 어떨까? 우리의 농업부문은 고속도로에서 몇 km로 달리고 있을까?
우선 다른 산업분야와 발전 속도의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달려야 한다. 농업이 다른 산업의 변화 속도를 뛰어 넘어 생명산업으로 도약하여야 한다.
토플러는 머지않아 농업이 첨단과학과 접목되는 제3의 물결이 가시화되면서 산업발전의 중심이 될 것으로 예견하였다. 특히 한국농업은 기술집약적인 농업의 특징을 살려나가는 정밀농업을 추구하는 것이 경쟁력 면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한편 프로슈머와 그린슈머의 소비트렌드를 정확하게 읽어 내고 이에 대비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부(富)를 얻는 농부(農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는 생명과학을 기반으로 제3의 농업기술혁명이 시작되고 농업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풍부하게 응용되는 지식기반산업으로 발전하여 고도의 기술과 경영마인드를 갖춘 농업인이 선택하는 매력있는 직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리한 통찰력과 지혜로운 혜안을 우리에게 선물한 앨빈 토플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땡큐 앨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