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다양성의 고갈은 가장 심각한 지구 문제
“예전에는 참 흔했는데 요즘엔 통 볼 수가 없네.”
우리 주위에는 이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설마 그 생물들이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진 않았겠지.” 하면서 근거 없는 낙관론자가 되거나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서 개구리,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금방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호들갑이냐고 반문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지식인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중한 친구나 이웃의 존재를 가볍게 여기는 자이다. 지난 세기 말 미국 뉴욕자연사박물관은 여론조사기관 해리스에 의뢰하여 저명한 과학자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들은 현대 인류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사회 및 환경문제로 <생물다양성의 고갈>을 들었다. 그들은 모두 환경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었다. 자연과학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지금 수준의 환경 파괴가 계속된다면 2030년경에는 현존하는 동식물의 2%가 절멸하거나 조기 절멸의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번 세기의 말에 이르면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생물다양성의 감소에 관한 이 같은 예측들이 나와 있어도
현대인의 대부분은 그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맑은 공기, 깨끗한 물, 비옥한 땅, 훌륭한 경관, 생물다양성을 비롯한 모든 자연자원은 이른바 모든 인류의 공유자원이다. 생물다양성과 자연자원의 가치를 증명하고 측정하는 일은 매우 복합적인 문제이지만 최근 환경경제학의 발달로 서서히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유전적 다양성, 종, 군집, 그리고 생태계의 경제적 가치에는 우리가 직접 수확하고 이용하는 직접 가치 외에도 자원을 개발하거나 파괴하지 않고 생물다양성에 의해 제공되는 간접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 결국 인간이 되살릴 것”
“오늘날 사람들은 지혜를 잊은 것 같아요. 오늘 내가 한 결정이 먼 미래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지혜죠. 그런데 요즘에는 당장 이익이 있을지, 주주총회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지, 다음 선거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만을 고려해 결정을 내립니다. 머리가 아무리 똑똑해도 열정과 연민과 사랑이 없으면 지혜를 발휘할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침팬지들의 대모’로 불리는 제인구달 박사(76)는 내한하여 경희대 국제캠퍼스 특강에서 “동물의 세계에서 비교할 동물이 없을 만큼 잘나고 똑똑한 인간이 어떻게 지구를 이렇게 망칠 수 있는지는 정말 의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달 여사는 자신을 스스로 ‘낙관주의자’라고 불렀다. 지구상에는 충격적인 자연파괴가 벌어지고 있고, 지구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가진 학자도 많지만 “우리가 아직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했다. “희망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죠. 저는 희망이 많다고 믿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생태계 보호에 참여했을 때만 희망이 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자연 사랑을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어떻게든 집안이 아닌 바깥에서 놀게 하고, 손을 더럽히고, 음식 재료가 어디서 오는지를 알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인구달 여사는 최근 <희망의 자연> 책에서 그 전의 책인 <희망의 이유>처럼 희망(Hope)을 강조했다. 나는 이 것을 그녀의 ‘낙관적인 편견’으로 생각한다. 현실은 그렇지 못한데 희망적인 편견, 긍정적인 편견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실천이 있어야만 한다.
“치명적인 오염·파괴·멸종으로 곳곳에서 절망감이 터져 나오지만, 불굴의 인간정신과 자연의 회복력이 있기에 희망은 아직 있습니다. 희망은 전파력이 강하고 우리와 지구를 살립니다. 희망을 간직한, 포기를 모르는 영웅들이 있다는 건 황홀한 일이고 우리에게 영감을 주지요.”
“눈을 감고 자기가 좋아하는 나무를 상상해 봅시다. 나무에서 처음 나온 뿌리와 잔가지는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강한 생명력으로 마법과도 같이 바위나 돌 틈을 뚫고 물가와 햇볕에 닿습니다. 어른들의 탐욕이 빚은 바위와 벽을 뿌리와 새싹 같은 젊은이들이 뚫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전 세계 121개국에 회원을 두고 있는 청소년 환경운동 <뿌리와 새싹>을 통해 환경파괴적 기업이 만든 상품 불매, 물고기 방사 같은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을 강조하는 제인구달 여사의 열성 팬이 된 나는 이번 세 번째의 만남에서도 큰 영감을 얻었다.
비관론이 판을 치는 세상에 낙관론자는 자칫 더 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줄곧 희망(Hope)을 이야기 하는 것은 희망의 확산만이 인간의 탐욕과 맞싸울 수 있는 상대가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런 이유로 그녀를 미래의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다. 그녀의 대중강연에 동행했던 내 두 딸에게 그녀의 지구사랑, 생명사랑 정신 그리고 희망이 감염되었길 바래보았다.
언젠가 생태계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질지도 몰라
생물다양성의 보전은 우리 인류의 생존과 안녕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자연계를 구성하는 모든 종들은 다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그 균형을 깨는 일은 그 어느 구성원에게도 궁극적인 이득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인간도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생태적 제한 속에서 살아야 하고 지구의 청지기로서 그 임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생물다양성은 또 생명의 기원을 구명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단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일부만이라도 잃을 경우 우리 자신의 존재 이유와 기원의 비밀을 푸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환경 관련 대중강연을 할 때 종종 서양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하는 젠가(Jenga)라는 게임을 소개한다고 한다. 직육면체의 나무토막들을 가지런히 쌓아 올린 후 하나씩 빼다가 전체 구조물이 무너지면 끝나는 게임이다. 생태학은 아직 자연계의 모든 종들 간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어떤 종이 사라졌을 때 생태계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는 주장은 참으로 섬뜩하게 들린다.
2010년은 유엔이 정한 생물다양성의 해
이제 더 이상 개발이냐 보전이냐를 논의할 여유가 없다. 환경을 파괴하면서 경제개발을 달성하던 회색성장의 시대가 가고 환경을 보전하며 경제개발을 도모하는 녹색성장의 시대가 열렸다. 보전을 생각하지 않는 개발이 조금만 지속된다면 실로 우리 인류의 미래 자체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2010년은 유엔이 정한 ‘생물다양성의 해’이다. 이 해가 저물기 전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기 바란다.
“인류의 머리가 아무리 똑똑해도 열정과 연민과 사랑이 없으면 지혜를 발휘할 수 없습니다.” 제인구달 여사의 혜안이 많은 지구인들에게 확산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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