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안보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전쟁은 더 이상 위협요소가 아니다. 지금 누가 미국을 공격하겠는가. 하지만 기후변화는 지구 전체를 위협할 것이다. 기후변화와 인구증가, 물 부족, 식량가격 상승 등이 21세기의 새로운 안보 위협이다.”

2011년은 기후변화와 자연재해의 해로 기억될 듯하다. 뉴질랜드 대지진, 일본 쓰나미와 후쿠시마원전 폭발, 미국 남동부의 초강력 토네이도, 호주의 대홍수… 과학기술과 문명도시로 상징되던 선진국들은 재난 앞에서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재난이 후진국만의 것으로 여겨지던 상식은 이젠 통하지 않게 되었다. 100년 만의 대재앙이 올 한 해로 끝나리라는 전망도 감히 할 수 없게 되었다.

안보 위협은 전쟁보다 기후변화 등 환경

“우리는 안보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 전쟁은 더 이상 위협요소가 아니다. 지금 누가 미국을 공격하겠는가. 하지만 기후변화는 미국과 세계를 위협할 것이다. 기후변화와 인구증가, 물 부족, 식량가격 상승 등이 21세기의 새로운 안보 위협이다.”
월드위치 연구소를 설립한 세계적인 환경석학 레스터 브라운(Lester Brown)*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기후변화센터 창립 3주년을 기념한 국제심포지엄에 초대된 그는 기후변화가 일으키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흐름과 이에 국가와 기관과 기업 그리고 시민들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듣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심포지엄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이 심한 현 에너지경제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20세기에는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 안보의 중심이었다. 이에 대응에 플랜A 즉 군사력 확충이 필요했다. 이제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인은 무장 침략이 아니라, 기후변화와 인구증가, 물 부족, 빈곤, 식량가격 상승, 국가 파탄이다. 새롭게 등장한 위험한 사회 앞에서 국가 차원의 미래전략과 전 사회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플랜B가 필요하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 레스터 브라운  
미국 워싱턴에 있는 비영리 학제 연구기관인 지구정책연구소(2001년 설립) 소장이다. 연구소의 목적은 문명을 지속할 계획을 세우고 실질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는 지구 복원 로드맵인 ‘플랜 B’를 주창하며 오늘날 널리 쓰이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알리는 데 기여했다. 1974년 록펠러브러더스펀드로 월드워치를 창립한 그는 1987년 유엔 환경상, 1989년 세계자연보호기금 금메달, 1994년 푸른지구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미국 포린폴리시가 선정한 최고 국제사상가 중 한명으로 선정됐다.

“온실가스 줄여야만 우리의 미래가 있다”

생태계 보존을 위해 오는 2020년까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80% 줄이자는 플랜B를 주창한 브라운 소장은 전 세계가 한 방향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성취하기 어려운 야심 찬 목표가 분명하다. 그러나 북극의 빙하가 녹아 전체 해수면이 1m 상승하면 방글라데시의 농경지가 50% 줄고 세계 2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의 메콩델타 지역 침수 등으로 인한 농작물 가격 상승, 해안국가들의 침수로 1억명 이상의 기후 이민자가 발생한다. 온난화로 인한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ㆍ급격한 변화의 시점)를 현재로서는 추정하기 어렵지만 임계점을 넘어서면 인류는 멸망의 길에 들어서고 만다고 그는 경고했다.

희망의 로드맵이 필요한 이유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에 드는 지나친 비용 부담과 짧은 기간을 두고 터져 나오는 반대 의견에 대해 그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인한 군수품 확충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루스벨트 대통령은 불과 몇 개월 만에 자동차 생산지역을 탱크ㆍ비행기 등 군수품 제조공장으로 바꿨다. 물론 불편을 감수하고 자동차 생산은 멈췄다. 지금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의 온실가스 배출전망치로는 인류의 문명을 지속시킬 수 없다. 짧은 기간에도 현 에너지경제 체제를 반드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아시아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목격한 미국인과 기업들이 루즈벨트 대통령의 리더십에 기꺼이 따랐다.

나는 생각해 본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잇따른 환경재앙에 인류가 패닉상태에 빠져야만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변할 것인가? 그래야만 에너지경제를 바꾸고, 정책을 바꾸고, 생활습관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게 될까?
안타깝지만 개인적인 시각에서는 그럴 공산이 커 보인다. 세계 금융자본주의 위기에 정치적 글로벌 리더십은 부족하고 인류는 물질적 풍요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에 가진 것들이나 편하게 누리고 있는 상태를 포기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국제적인 콘트롤타워가 없고 리더십도 부재하다. 극적인 변화와 희망의 로드맵이 필요한 이유다. 
 
기후변화와 식량부족이 인류의 미래 위협 

현실적인 실천 방안도 제시했다. 브라운 소장은 “자동차 수를 줄이기 위해 도시 교통체계를 바꿔야 할 때가 왔다. 과거에는 자동차가 중요한 이동수단이었지만 이제는 세계 인구의 80%가 도시에 밀집해 소음ㆍ교통정체ㆍ환경오염의 주범이 되고 있다. 자동차 중심에서 인간친화적인 교통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브라운 소장에 따르면 과거 수메르문명은 관개체제가 실패해 토양 염분 상승으로 밀 수확량이 감소했고, 마야는 산림 황폐화로 토양침식이 일어나 식량부족으로 멸망했다. 문명 붕괴에 앞서 환경적 쇠퇴기(환경변화)가 있었고, 그런 변화가 식량부족 사태를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지금 우리 문명도 마찬가지로 과거처럼 식량경제가 붕괴되고 있다면서 올 여름 러시아 서부지역에서 열파(熱波)가 이어져 1억톤에 달하던 곡물 수확량이 6,000만톤으로 감소한 사례를 예로 들었다.
기후변화 위협을 모면할 플랜B(대책)으로는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효율 향상,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을 꼽았다. 브라운 소장은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0%를 줄이고 세계 인구를 80억명 수준에서 안정시키는 한편 빈곤을 퇴치하고 숲, 토양, 어장 등의 자연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의 거장, 위인들의 삶의 철학

“지금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문지방’을 넘어섰으며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마감시간을 위반하고 있다. 자연은 일종의 시계지만 우리는 그 시계를 보지 못한다. 무자비하게 확장되는 인간의 욕구가 숲과 목초지, 수산자원에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가하고 있다. 전 세계의 생물종들은 새로운 종이 진화하는 속도의 100배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멸종의 시계를 빠르게 앞당겨 놓았다.”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에 대해 생태학자 레스터 브라운은 발표 후 “운동화를 신고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이유”를 묻는 한 고등학생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저 내 라이프스타일이다. 나는 지난 30년간 승용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지냈다. 해외출장 중 공항에서 걸어야 될 때가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포럼의 좌장을 맡은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침팬지 연구 과학자인 제인구달 여사의 국내 활동 수행 중의 에피소드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그녀는 식당에 가면 테이블 위의 물 잔을 엎어 놓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어요. 웨이터가 와서 물을 따르려면 이렇게 말하죠.”
“내가 마시고 싶으면 부탁드리죠.”  

시대의 거장, 위인들의 삶의 철학은 이렇게 생활과 행동에 녹아 있었다. 친환경 매체의 기자로서 나의 지난 생활습관에 부끄러움이 앞선다.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지구의 미래를 훔쳐 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신 차리고 덜 소비하고, 덜 먹고, 덜 배출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세계를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글로벌 리더십이 복원되어 인류가 기꺼이 함께 참여하는 희망의 로드맵을 짜야 한다는 생각이 교차한다.  
 
벼랑 끝에 선 지구를 함께 살려내야 하지 않겠는가?    

작성자 : 윤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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