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맑은 생태도시 담양(潭陽)의 컬러는 초록이다. 초록은 세계적 색채연구소 팬톤이 올해의 색을 '에메랄드그린'으로 발표하면서 세상의 컬러로 부상했지만, 죽녹원(전남 담양군 담양읍 향교리 282번지) 초록대숲은 이미 ‘치유와 부활’의 공간이었다. 2003년 31만㎡에 조성된 죽녹원 8길(운수대통길, 사색의 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죽마고우길, 추억의 샛길, 성인산 오름길, 철학자의 길, 선비의 길)을 찾은 모든 이들이 정말로 행복해 보인다. 그들의 표정과 동선에서 묻어나는 여유와 느긋함은 이곳의 풍경과 색감을 닮았다. 대나무는 하늘을 뚫을 듯 빽빽이 솟구쳐 죽림을 만들고 곳곳에 놓인 전망대, 폭포, 대숲쉼터, 대나무생태전시관에는 대나무 맑은 숨결이 배어있다. 들숨과 날 숨결로 피톤치트향과 산소와 음이온이 가득 채워지는 이 상쾌하고 건강한 느낌!

이곳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음력 5월 13일에 마을마다 대나무를 심었는데 일제 때 끊긴 맥을 2005년에 죽취일축제로 계승하면서 대나무에 대한 인식과 정체성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 주민들의 일편단심 이어진 대나무심기의 진정성이 확 마음을 끈다.

죽녹원 앞 징검다리를 건너 담양천변 제방에 올랐다. 유난히 아름드리나무가 눈에 띈다 했더니 이곳이 ‘관방제림(官防堤林)’이다. 제방 양쪽으로 즐비한 노거수의 당당한 위풍이 대단하다. 산책 나온 주민들과 외지인들이 둑방길 들마루에 둘러앉았다. 한 폭의 정지화면이다.

조선인조 26년(1648) 홍수피해를 막으려 둑을 쌓고 나무를 심었고, 재정비를 하면서 부임한 관리들도 사비를 털어 제방을 관리했다. 당시 700여 그루의 나무는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2㎞ 구간에 200년이 넘는 느티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개서어나무 320여 그루가 세월의 무게만큼 견고하게 제방을 지킨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쌓은 신뢰와 약속은 몇 백 년을 이어왔고, 오늘 그 징표가 아름답다. 둑방길과 노거수의 묵묵한 몸짓에서 나는 내 영혼을 흔드는 감동을 받았다.

제방 끝 도로 건너편에서 만난 메타세쿼이아 길이 잠시 눈에 들어왔을 정도로 관방제림이 빚어낸 아우라는 대단했다.

담양 슬로우시티 ‘삼지천 마을’엔 초여름 햇살이 찰랑인다. 마을입구에서 시작된 돌담은 골목으로 끝없이 이어져 500여 년 전에 형성된 향촌마을의 정서를 오롯이 전한다. 마을엔 현재 전통가옥 13채가 남아있다. 돌과 흙으로 만든 흙돌담은 총길이가 무려 3,6㎞며, 돌담길에서 만난 집집의 특색 있는 문패가 주인장을 대신했다. ‘나무를 사랑하는 집, 야생화효소 집, 매화나무 집, 달구지 민박….’ 전통방식의 창평쌀엿, 한과도 유명하단다. 마을 남쪽으로 흐르는 봇도랑엔 맑은 물이 흐르고, 모내기가 끝난 들녘은 초록물결이 넘친다. 소박하고 유유자적한 이 여운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와 아파트로 채워진 도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다. 자연과 전통문화를 잘 보호하면서 경제살리기를 통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담양 창평면 삼지내 마을!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핀 공터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건너편 추녀를 응시한다. ‘마음의 고향’이 울려 퍼진다.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소쇄원(瀟灑園)에 들어섰다. 소쇄옹 양산보(1503~1557)가 조성하고 아들과 손자 3대에 걸쳐 완성한 자연과 인공이 만난 조선최고의 정원이다. 담장 밑으로 흐르는 계곡물 가까이 제월당(霽月堂)엔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을 보려는 듯 내방객이 대청마루를 차지했다. 몇 세기 전 이곳에 드나들며 시문과 정치와 학문을 논하던 당대인들을 떠올리자 일순 숙연해진다. 남다른 우정 속에 날카로운 식견으로 현실의 모순도 비판하면서 도도한 시흥이 넘치면 주옥같은 가사문학도 꽃피웠을 터… 건너편 광풍각엔 청량한 바람이 머물다 간다.

자연 속 인간이 얼마나 겸허하고 정직한지 또 얼마나 행복한지 담양의 대숲에서 관방제림과 소쇄원에서 무던히 느끼고 채웠다. 초록빛 ‘성장·회복·희망’을 품은 담양고을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