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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07 12:01
[인터뷰] 천규석 농민운동가 -
 글쓴이 : 친환경 (58.♡.80.182)
조회 : 1,108  

농민운동가 천규석 씨를 만났다. 철저한 원칙주의자이고, 철학자이며, 환경주의자인 그는 평생을 친환경·유기농업에 종사했고, 지금도 대구 한살림을 대표하고 있다. 유기농업의 원로인 그의 입에서는 날카롭고, 아픈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내 친환경·유기농업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그가 말하는 친환경·유기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친환경·유기농업. 소농, 가족농이 희망인가?

Q. 농업이 점차 규모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소농과 가족농이 소외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정책도 미미합니다. 어쩌면 친환경에 가장 어울리는 것이 가족농이라 생각되는데..

A. 기본적으로 친환경농업을 농약과 비료를 안 쓰고, 적게 쓰는 협의의 내용으로 이해하지요. 물론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려면 규모가 작어야 합니다. 농업 규모가 기업식, 공장식이면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다 해도 물을 다량으로 소비하고, 오염시키며, 환경문제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친환경이라는 이름하에 환경을 오염시키고 파괴하면 되겠습니까?

환경이라는 것은 순환이 되어야 합니다. 화학물질은 유기물과는 달리 생명을 차단합니다. 유기물은 생명을 재생산하는 즉, 썩어서 다시 순환되는 순환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은 유한하기 때문에 환경을 살리려면 순환이 필요합니다. 동물이 죽어서 썩으면 식물이 흡수하고, 그 식물을 다시 동물이 먹고, 이런 식으로 순환이 되어야 친환경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항생제를 잔뜩 준 축분을 유기농업에 다시 사용한다.’ 이런 말은 어폐가 있는 것이지요. 환경적으로 엄밀하게 따지면 사람이 사는 것도 반환경, 분뇨를 재활용 하지 못하는 축산 또한 반 환경입니다. 전통농업의 경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순환이 되었습니다. 순환되지 않는 친환경농업은 엉터리가 아닐까요?

 

예전 녹색평론에 농업 관련 글을 기고했었는데, 그 때 김성훈 전 장관도 지면을 통해 가족농과 소농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장관입장에서 가족농, 소농을 주장한다면 우리 농업의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 않겠습니까? 장관이 자기주장을 다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친환경농업을 하려면 시골에 사는 소농 위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기업농이니 규모화니 이런 곳에 지원을 해야 하니깐 정부의 정책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친환경은 가족농, 소농이 중심이 되야 합니다. 농업을 순전히 경제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지구상에는 극소수의 초대형 기업농만이 살아 남을 것입니다. 소농이 주축을 이루는 가족농은 마땅히 도태될 것입니다. 하지만 순환이 되는, 제대로 된 친환경·유기농업은 가족농 체제에서 가능합니다. 농민과 환경, 소비자 모두를 살리는 길이 바로 가족농입니다.

 

유기농 그 다음 단계. 무투입

Q. 유기농업을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하신다고 하는데

A. 예를 들어 유기농업은 이제 친환경농업의 대명사이며 가장 높은 단계라고 하는데 이제는 한 단계 극복해야 합니다. 몇 년 전부터인가 시골에서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지요. 농민들이 ‘공룡알’이라 부르는 원형 곤포 사일리지입니다. 처음에는 들판마다 하얀 공룡알이 있어서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농민들이 벼를 수확하고 남은 볏짚을 말아 놓은 것이라 말해주어서 알았습니다.

‘사료값이 올라서 이제는 짚도 싹싹 긁어 가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짚도 안 넣어주고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까? 정말 기가 찰 노릇입니다.

마트에 가도, 동네 슈퍼에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친환경농산물들이지만, 순환이 안되는 농법으로 생산한 친환경농산물은 껍데기만 친환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기농 다음 단계로 생각하는 것은 ‘무투입’농법입니다. 당연히 농약과 비료를 쓰지 말고, 볏짚만을 환원해서 농사를 지어보자라고 생각해 홍성의 젊은 30~40대 생태주의자들을 찾았습니다. ‘유기농의 방향을 앞으로 무투입으로 잡고 철저히 데이터를 기록해라’라고 부탁했습니다.

한살림의 오래된 원로 생산자인 아산의 정선섭 씨도 이런 무투입농법을 몇 년동안 실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유기농으로 하고 일부 3,300㎡(1,000평)에 무투입 농법을 실시했더니 대략적으로 20% 정도 유기농에 비해 수량이 적게 나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산된 쌀은 경기 남부 한살림에 납품되어 판매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최소한의 자재, 즉 볏짚 정도를 환원해서 농사를 짓는 무투입 농법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방향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제는 친환경이 보편화 되었지만 관행농이 대부분이고 유기농은 극소수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무투입 농법으로 방향을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농민. 먹거리를 통해 사상과 철학을 전한다

Q. 친환경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신뢰인 것 같습니다.

A. 예전에 비해 한살림이나 생협도 규모화, 기업화되고 있습니다. 물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하고 있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원리원칙을 강조했던 친환경 1세대들은 이제 거의 시대의 흐름 속에 사라지고 있습니다. 남은 후배들이 자본주의나 물량주의에 휘둘리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한살림을 시작하면서 농민운동은 그만 두었습니다. 자꾸 예전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늙은이의 푸념으로 들어주세요. 지금 세대들과 예전 친환경 1세대 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농업 소득이 작기 때문에 규모화를 해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초창기 한살림에서는 가격결정을 할 때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양보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 챙길 것은 챙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려스럽지요.

친환경이라는게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농산물은 소비자와 생산지를 이어주는 매개체입니다. 한살림은 먹거리를 통해 사상과 철학을 주고 받는 단체입니다. 농민의 사상과 철학을 소비자에게 보내는 것이 친환경 농산물이고, 소비자는 그것을 구입해 농민들의 뜻과 철학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해관계가 앞서면 신뢰는 무너지고 맙니다.

한살림 회원도 30만명을 넘어서고 생산자도 3,000여 명이 넘습니다. 규모가 크기 때문에 교류가 잘 안되는 것은 현실이지만 규모화의 논리만 내세우면 안됩니다.

 

“요즘 껍데기만 친환경인 것이 많죠. 순환되지 않는 친환경이 어떻게 진짜 친환경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로컬푸드.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다

Q. 로컬푸드, 지산지소, 친환경꾸러미 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A. 물류가 거대화 되니깐 대구지역에서 생산된 물건이 한살림 유통센터를 거쳐 다시 내려옵니다. 대구지역을 담당하는 나도 어떤 농민이 무엇을 생산하는지 잘 모르게 되어 버린 것이지요.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점점 멀어지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물류의 지역화입니다. 물론 돈과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요즘 로컬푸드, 로컬푸드 하는데 그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 매우 애매합니다. 과연 로컬푸드의 범위를 얼마만큼으로 정해야 할까요? 이동 수단을 자동차로 정한다면 로컬푸드의 범위는 전국이 될 것입니다.

전국을 하나의 로컬푸드로 정한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로컬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습니다. 단순히 수입만 반대하고 국산농산물만을 먹자? 안됩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미국의 한 주의 크기보다 작을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로컬을 정해야 합니다. 로컬푸드를 잘 못 이해하면 지역이기주의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우리 시, 우리 군 농산물만 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기 지역에 나오지 않는 친환경농산물도 타 지자체에서 가져오지 말고 자신의 지자체에서 나오는 관행농산물을 쓰자는 의견을 낼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협의를 하면 됩니다. 로컬푸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소통이기 때문입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 농업

Q. 농업 부문에 개방이 가속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A. 정부에서는 FTA다 수입개방이다 해서 농업을 포기하는 것 같습니다. ‘일부의 희생이 있어도 불가피하다’라는 식의 정책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FTA로 교역이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환경적인 측면에서 FTA는 파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로 인해 가장 싼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는 경제학의 논리이지 농업 부문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농업의 미래를 이야기 할 때 쿠바와 북한의 예를 듭니다. 쿠바의 경우 위기를 잘 대응해서 적은 고통을 받고 넘어갔지만, 북한의 경우 대응을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최악의 고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전 우리나라가 농기구가 없을 때 북한은 집단농장에서 기계화 농업을 실시했습니다. 규모화한 집단농장에 석유에 의존하는 기계농업을 하고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이주했습니다. 하지만 석유의 공급이 줄어들자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쿠바는 석유의 공급이 끊기자 재빨리 예전 유기농으로 돌아갔습니다. 카스트로의 집무실에는 병아리가 돌아다니고 관저에는 돼지 우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카스트로는 그 만큼 농업과 가까운 사람이며, 소농의 정신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쿠바의 경우 현재 유기농업 국가가 되었습니다.

어려운 현실 속에 친환경농업을 포기 하지 않는 농민들이 있습니다. 미래세대의 희망을 지키는 것이 바로 농업입니다. 보람이나 가치를 몸으로 실현하고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바로 농업입니다.

농업은 인류가 지켜야 할 마지막 가치이기 때문에 지키고 있다는 것, 농업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입니다.

농업. 보람이 있지 않습니까? 보람이 바로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