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대의 배산지 중 한 곳인 경기도 안성시는 당도와 품질이 타 지역을 웃도는 배 재배단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경기도 전체를 통틀어 유기농 배를 재배하는 곳은 다섯 곳이 고작이다. 그 중 안성시에는 유일하게 한 농가만이 유기농 배 재배를 이어가는 중이다. 정말 유기농 배 재배는 어려운 일일까? 안성시 미양면에 위치한 당골농원(대표 김상설)을 찾아가 유기농 배 재배의 가능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창간호 때 만난 사람, 김상설 씨

9년 만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소박함이 배인 동작과 털털한 웃음이었다. 농장은 그 때보다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고, 나무의 수세는 올곧게 뻗친 가운데 주렁주렁 배가 달려 있었다. 월간 친환경 창간호 때 만났던 당골농원 김상설 씨를 다시 찾았다. 창간호 당시 첫 재배농가로 선정된 김 씨는 안성 지역에서 유일하게 무농약 배 재배를 하고 있었는데 여전히 그 맥을 이어 이제는 유기농 배 재배에 여념이 없었다.

“9년 전 딱 이 맘 때죠? 그 때 월간 친환경이 창간한다고 했을 때 무척 기뻤어요. 왜냐면 제가 친환경농업을 하면서 매우 힘들었을 때거든요. 그런데 이런 책자가 생긴다고 하니 같은 동지로서의 마음이랄까, 저에게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 몰라요.”

2005년 당시를 떠올리며 김상설 씨는 지금도 정말 고마웠다고 말을 건넸다.

안성시에서 ‘나홀로’ 유기농 배를 재배하고 있는 김상설 씨는 1965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배 재배를 본격 시작했다. 현재는 약 16,000㎡(약 5,000평) 농장 모두가 유기농 배로 가득하지만, 당시는 당연 관행재배였다. 그러다가 1995년 새농민상을 수상할 정도로 질 좋은 배를 생산하던 그는 2000년 해외 선진 기술 강의에 초청을 받았다. 그 때 들었던 내용이 유럽에서 성행 중인 유기농업에 대한 것이었다. 그 강의를 통해 유기재배의 인식과 필요성이 마음에 각인되면서 유기농업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그 강의를 들으며 한마디로 충격을 받았죠. 그동안 환경 문제와 안전한 먹거리를 생각지 못했던 제 모습이 떠올라 얼마나 부끄러웠는데요. 당시에는 농약 치다가 쓰러지는 사람도 많아서 제 가슴을 더 울렸어요. 그러다가 결국 유기농업이 나의 길이구나 생각하고 이튿날부터 유기농 재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아내와 마찰까지 빚은 유기농 재배

그날부터 본격 유기농 재배 준비에 들어갔다. 서점에서 책을 구하고 신문을 뒤지며 주위에 유기농 재배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그러다가 단국대에서 유기농과가 개설되었다는 소식을 접해듣고는 바로 등록하여 매주 서울과 안성을 오가며 학업에 몰두했다.

“처음에는 무농약으로 시작했어요. 첫 해와 이듬해까지는 순조로웠어요. 그런데 3년 차에 접어드니 드디어 나무에 반응이 오는 거예요. 사람과 동물처럼 스트레스를 경험하는지 열매도 시원찮고, 수세도 엉망이 돼 가는 겁니다.”

그동안 가락시장에서 5번째 안으로 배 납품하던 김 씨였지만 무농약으로 전환하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출하한번 해 본 적이 없었다. 결국 함께 농사짓던 아내와 마찰이 빚어졌다. 그만 유기농을 포기하라는 아내의 말에 그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맞대응했다. 그러다가 다툼을 피하기 위해 김 씨는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농장에 나갔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한 무더기씩 떨어져 있는 배를 아내 몰래 버리기 위해서다. 자식 같은 작물이 나가 떨어진 것을 보면 아내의 잔소리가 더욱 거세질 것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유기농 배를 시작하면서 판로는 대부분 끊겼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농사는 유기농업이 아니고는 답이 없다는 신념이 그를 강하게 붙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진심에 아내도 마음을 열게 되었다.

유기농 배, 누구나 할 수 있다

경기도를 통틀어 유기농으로 배를 생산하는 곳은 다섯 군데다. 그만큼 유기농 배는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다. 김 씨는 6년의 인증 기간을 거치고, 또 4년이라는 재배 경험을 쌓은 후에야 비로소 농장이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지금처럼 수확이 자리 잡기 시작한지는 3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 씨는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하고 있다. 전국 어디서든 유기농 배 컨설팅을 의뢰하면 직접 찾아가 유기농 배 재배 가이드를 상세히 알려 줄 정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자신을 찾는 배 농가는 없다고 한다.

유기농 배 재배는 누구나 가능하다고 하는 김상설 씨는 세 가지만 지키면 누구나 재배가 가능하다고 한다.

첫째는 우선 품종을 갱신해야 한다는 것. 현재 우리나라 배 품종의 70~80%는 신고 품종이다. 그러나 신고배는 병에 매우 취약하다. 꽃도 암꽃만 있어서 벌이 달려들지 않아 수분하기도 어렵다. 단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소비자 입이 신고배에 길들여져 있을 뿐 수확에는 큰 장점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국산 품종 중에 당도도 좋고 흑성·적성병에도 강한 품종이 있다. 원황과 만풍, 신화, 화산, 추황이 그것이다. 이 다섯 품종은 맛은 물론 병충해에도 강해 유기재배를 원한다면 이 품종으로 갱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김 씨는 기존 신고품종을 줄이고 만풍과 원황을 확대 재배하고 있다.

둘째는 확고한 의지다. 유기농 재배의 길을 한 번 갔으면 끝까지 포기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당장의 돈에 집착하게 되면 유기농 재배와는 거리가 멀게 된다. 토양과 나무가 유기농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릴 수만 있다면 누구나 유기농 재배가 가능하다. 확고한 의지는 결국 인내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노하우를 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노하우는 앞의 두 가지를 시작하면 저절로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배 재배 강의를 많이 듣는다 해도 직접 배를 재배하지 않으면 그 지식이 한낱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나 배를 재배하는 가운데 현장에서 기술을 배우면 하나하나가 노하우로 이어지게 된다. 즉 직접 유기농을 시작해서 시행착오를 몸으로 겪지 않으면 노하우를 아무리 전수받는다 해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기재배를 시작하고 나면 한 마디 한 마디가 자신의 가슴에 박혀 기술로 남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한다.

토양·병충해·당도 문제 끝!

김 씨는 유기농 배에서는 병충해이 가장 어려운 숙제라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병충해도 결국 기술만 터득하면 문제없다는 것이다. 흑성병은 석회유황합제로 방제한다. 비가 오기 전과 비가 온 후에 유황을 배에 살포하는 것으로 흑성병을 예방할 수 있다.

충해는 깍지벌레다. 5월초부터 생겨나는 깍지벌레는 흑성병보다 더 나쁘다. 배 즙을 빨아먹는 깍지벌레는 즙으로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든다. 조류 피해도 만만치 않다. 당도가 올라갈수록 그 피해의 대상이 된다. 김 씨의 농장은 까치보다는 직박구리와 찌르레기의 피해가 더 크다. 그러나 그는 매년 조류와 싸우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웃어 넘긴다.

“유기농 재배는 생태계와 공존관계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해요. 자연과 함께 가자니 자연 생물에 대한 피해가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아요. 조류 피해를 입은 것은 즙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여 크게 신경 쓰고 있지는 않아요.”

김 씨가 이 같은 피해에 의연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유기농업이라면 당연한 일이라는 마음가짐 때문이다. 이런 마음가짐이 실패와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김 씨는 말한다.

김 씨의 배 당도는 관행농이나 저농약보다 높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가지치기 때문이다. 가지의 열매를 제한하여 당도를 높이는 것이다. 또 기존 수확 시기보다 약 일주일간 미뤄 당도를 충분히 올리고 있다. 한살림이나 생협에 전량 납품되고 있어서 판로에 좇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수확량은 저농약보다 15% 가량 줄어들지만 그래도 수확 시 만족도는 훨씬 큽니다. 소비자들에게도 떳떳하고요. 유기농업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환경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데 더 보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로 하여금 우리나라 친환경 산업에 조금 더 보탬된다면야 만족할 뿐입니다.”

김상설 씨는 첫 만남 이후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친환경농업에 열의만큼은 여전해 보였다. 칠순을 눈앞에 둔 그에게 유기농은 다소 힘겨워 보일법도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는 김상설 씨를 통해 유기농업의 희망을 읽어 본다.  

조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