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들은 한결 같이 말한다.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라고. 하지만 천덕꾸러기인 잡초의 순기능을 알고 잡초와 평화적 공존으로 생태농업을 지속하는 이가 있다. 바로 육백마지기 생태농장 이해극 대표이다. 이해극 대표는 지난달 24일 청옥산 육백마지기 생태농장에서 잡초공적비 제막식 및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왜 잡초의 공적을 기리는 공적비를 제작했을까? 1,200m 고지에서 열린 잡초공적비 제막식 현장을 전한다. ı이경민 기자

잡초는 유기농업의 동반자입니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척박한 곳. 그동안 농약과 화학 제초제의 마법으로 관행 농사만 지어오다 결국 땅도, 작물도, 사람도 살지 못하는 곳이 되어 버린 청옥산 1,200m 육백마지기. 땅이 이렇다 보니 장마철만 되면 폭우로 인해 헛골의 농토가 유실되어 자갈 뿐인 척박한 곳이 됐다. 한 농부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농사를 짓다가 포기한 이 척박한 땅에 잡초를 키우고, 호밀을 뿌렸다. 일년에 네댓 달을 제외하면 작물이 없는 휴경기에 호밀을 재배해 호밀짚을 녹비로 이용해 지력을 배양한다는 것이다. 거센 바람 속에서도 사력을 다해 흙을 온전하게 붙들고 있는 잡초를 보고 그는 잡초에서 희망을 보았다. 농부로부터 잡초라는 죄목의 천덕꾸러기로, 박멸해야 할 주적 1호로 지목된 잡초가 희망이 된 것이다.
잡초와의 평화적 동거는 작물을 심고 잡초가 함께 자라면 25~40cm가 될 때까지 방치했다가 그것이 작물의 통풍과 채광에 영향을 주고 양분 쟁탈을 하는 시점에서 비로소 예초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초 후 남은 그루터기와 잡초의 뿌리가 헛골 빗물 유속을 줄이는 기능을 해 비옥한 토양을 확실하게 붙들어 주는 것이다.

“잡초는 극찬 받아야 마땅합니다. ‘잡초와의 전쟁’이라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특히 유기농업에서는 박멸해야 할 성가신 존재가 아니라 필수 불가결한 요긴하고 고마운 동반자입니다.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만류하던 육백마지기 농사는 이렇게 잡초와의 공존을 통해 가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잡초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육백마지기 3만 여 평의 농지는 잡초와 함께 공존하며 토마토, 샐러리, 무 등 여러 농작물을 건강하게 길러내고 있다. 잡초가 있었기에 땅도 살고 작물도 살고 사람도 살았다. 이해극 대표가 잡초와의 공존과 잡초의 순기능을 기리며 잡초공적비를 세운 이유다.

잡초와의 평화적 공존, 잡초공적비
잡초공적비 제막식은 지난달 24일 청옥산 1,200m 육백마지기 생태농장에서 진행됐다. 식생활국민네트워크 황민영 대표, 전 마사회 이우재 회장, 환경농업단체연합회 곽금순 회장, 한국친환경농업협회 김영재 회장, 서울시 배옥병 먹거리정책자문관, 충북도 이상혁 농정국장, 국립농업과학원 고병구 유기농업과장, 한국유기농업학회 윤주이 회장, 월간 친환경 이영자 발행인, (주)대유 권옥술 회장 등을 비롯해 유기농업에 관련된 수많은 내빈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내빈들의 축사에 이어 작곡가 김희갑 님의 ‘잡초’ 축가, 김종태 시인의 ‘잡초’시 낭독 등의 축하공연이 이어지고, 내빈들과 함께 잡초공적비 제막식을 진행했다.
이해극 대표는 “평생 친환경농업실천으로 생태복원에 진력해 후일, 자갈투성이의 황무지 농토나 물려주는 염치없는 늙은이 농부세대로 기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인사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