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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7-24 18:56
[올가닉컬쳐] 농부의 딜레마
 글쓴이 : 친환경 (58.♡.80.182)
조회 : 6,258  

“올해도 풍년일세!” 가을 수확철이 되면 활짝 웃는 모습의 농부가 TV에 나오면 덩달아 국민 모두 기뻐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웬일 인지 요즘엔 ‘풍년’이 뉴스감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풍년이 들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생산자이건, 소비자이건 마찬가지다. 특히 생산자는 시장경쟁 구조 하에서 개별농가의 생산이 늘면 곧 소득증가로 이어진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나기 일쑤다.

 

기후변화로 잦아지는 풍년과 흉년

풍년이 든 해에는 오히려 가격이 폭락하여 농가들이 소득감소 피해를 보고, 흉년이 들면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를 자주 경험해 왔다. (우리 조상들이) 그토록 원했던 풍년은 손해를 가져다 준 반면, 피하고 싶었던 흉년은 의외의 이익을 주기도 하는 의외의 결과다. 흉년이 들어서도 안 되지만, 풍년이 들어도 걱정인 것이 농업인들이 겪는 현실 속의 어려움이다. 농업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농부의 딜레마, 농부의 역설(farmer’s paradox) 현상이다.

최근에는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런 풍·흉 현상이 더욱 잦아지고 있다. 농산물 가격의 급등락 현상 또한 빈번해지면서 농가소득 문제는 물론 서민생계 안정과 맞물려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한다. 특히 농산물 시장개방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가는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린다.

안타깝게도 농부의 딜레마 문제는 대체로 가격 변동성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출 뿐, 직접 풍·흉에 따른 농가소득 및 농업인 관점에서 후생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반갑게도 영남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이용기 교수는 최근 농업경영·정책연구 제39권 4호 ‘농부의 딜레마 재조명’이라는 논문에서 균형 잡힌 연구결과를 밝혔다. 그의 논문은 기후변화로 초래되는 풍·흉으로 인한 농부의 딜레마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생산자 입장의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명하였다.

 

풍년엔 수매, 흉년엔 할당관세 발동

농가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가격 변동성 자체가 아니라 풍·흉에 따른 소득의 변화, 즉 후생의 변화이다. 특히 농업소득이 계속 줄어들고 도·농간의 소득격차가 커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가격의 불안전성이나 변동성 그 자체보다 풍·흉이 개별 농가들의 후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가 더욱 중요하다.

풍·흉이 반복되는 농업현실 속에서 풍작시 수매정책에 의한 정책간섭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풍년과 흉년이 동일한 확률로 반복되는 상황에서 시장기능에만 의존하면 농가들은 손해를 보게 되어 있다. 흉년시 가격상승으로 얻는 이익이 풍년시 하락으로 인한 손실보다 작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가소득 보장 측면에서 풍년시 사후적 수매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풍·흉의 정도가 심할수록 농가의 평균적 손실은 커지므로 수매정책의 필요성 또한 더욱 커진다.

하지만 흉년이 왔을 때 서민물가 안정이란 이유로 자주 시행되고 있는 할당관세 정책*은 농가 후생에 심각한 피해를 주게 된다. 흉작시 가격이 급등할 때만 할당관세를 도입하여 시장 간섭을 한다면 농가의 손실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할당관세의 남용은 단순히 농가 피해 차원을 넘어 장기적으로 국가 전체의 농업기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이처럼 수매정책으로 인한 이익보다 할당관세 정책으로 인한 손실이 더 크다는 점은 시장지배력과 교섭력이 없는 농업인을 우울하게 만든다. 따라서 할당관세의 시행은 매우 신중하게 도입해야 한다.

 

하단편집

* 할당관세(割當關稅) : 수입가격이 급등한 물품 또는 이를 원재료로 한 제품의 국내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필요한 경우 40% 범위에서 기본세율을 감하여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였고 서민물가 안정을 정책목표로 내세워 추진한다. 수년전 배추·마늘·양파 파동과 돼지고기 삼겹살 가격이 올랐을 때 이 제도를 시행하여 무관세로 수입을 촉진한 바 있다.

 

농업인은 항상 이익보다 손실이 크다!

풍·흉으로 인해 농가들은 딜레마에 빠지고 경제적으로 손해인 반면, 농산물 소비자들은 오히려 이익을 본다. 정책간섭이 전혀 없다고 가정할 때 풍·흉이 동일한 확률로 온다면 소비자 잉여는 증가한다. 흉년시 가격상승으로 인한 손해보다는 풍년시 가격하락으로 인한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풍년시에는 정책간섭이 없고, 흉년시에만 서민경제 안정을 들어 할당관세 제도를 통해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면 더더욱 소비자들의 이익은 증가하게 된다.

서민물가 안정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정책으로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이 동시에 이득을 보게 되고 결국 중상류계층은 반사이익을 보는 셈이다.

농가소득이 도시가구의 65%까지 추락해 있고 대부분의 농가는 영세한 서민이란 점을 고려할 때 할당관세 정책을 어떻게 시행하는 것이 평등과 부의 형평성 원칙에 부합하는 것일까?

농부의 딜레마는 농산물 공급의 불확실성, 수요의 비탄력성, 그리고 개별농가들의 시장지배역이 거의 없는 완전경쟁 시장구조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 현상이다.

자주 발동되는 할당관세의 시행이 농가 후생손실 즉 소득감소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각하다. 할당과세 제도가 무분별하게 시행되면 농가소득 감소는 물론 국내 농업기반을 크게 위협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의 시행은 최대한 신중을 기해야 함을 뜻한다.

 

앞으로 기후변화와 함께 농업에서 풍·흉 현상은 더욱 잦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수록 농부의 딜레마 현상 또한 깊어질 것이다. 정책당국이 면밀한 검토 없이 서민물가 안정과 소비자 측면만을 고려해 할당관세를 자주 시행한다면 농업·농촌·농업인의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OECD에서는 농업을 <다원적인 복합기능산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농업이 없는 국가를, 농촌이 없는 도시를, 농민이 없는 민족을.

 

불편한 진실, 바나나 ‘국민 과일’ 등극

최근 L마트가 지난 10년간 과일 매출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매출 순위 3∼5위를 오갔던 바나나가 2011년부터 2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에는 감귤이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나나 수요 증가는 국내 인구 고령화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바나나는 과육이 연하고 소화가 잘돼 노인 및 환자가 섭취하기 좋으며, 칼륨과 미네랄 함유량이 풍부해 뇌졸중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L마트는 지난해 전체 바나나 매출에서 50대 이상 고객 비중은 35%으로 매우 높았다. 이처럼 바나나가 어느새 감귤을 제치고 국민과일이 되었다는 불편한 뉴스는 우릴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식량자급률 22.6%, 쌀 자급률 86.3%, 쌀을 제외한 곡물의 자급률 3.5%, 대한민국 농업의 부끄럽고 초라한 성적표이다. 농업과 농촌은 국민 모두의 문제이자, 국가 주권의 문제이다.

일찍이 미국의 링컨대통령은 “농업만큼 노동으로 인류에게 바람직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직업은 없다”며 “농업은 가장 훌륭한 직업”이라고 칭송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필자는 믿고 있다.

국민행복시대, 농업인도 행복해야 한다!

 

농부의 딜레마는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같고 함께 풀어가야 한다. 예년에 없던 태풍으로 흉년이 들었다고 지금 당장 값싼 수입농산물을 카트와 냉장고에 담으면 우리 농업기반은 서서히 무너져 갈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회복이 힘들지도 모른다.

지속가능한 국가, 지속가능한 문화, 지속가능한 문명은 반드시 공동체의 지혜로움이 수반되어야 가능하다. 딜레마에 빠진 우리 농업인, 어려움에 처한 우리 농업·농촌에 관심과 성원을 보내야 하는 이유다.

▣ 자료참조 : 농업경영·정책연구 제39권 4호 ‘농부의 딜레마 재조명’(영남대학교 이용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