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인근 라왈핀디시에 위치한 건조농업대학((Arid Agriculture University in Rawalpindi, 이하 AAUR) 실습농장에 지난 2월 4일부터 3월 4일까지 한 달간 한국의 유기농 명장 정진영 농학박사((사)한국유기농업협회 명예회장)가 파송됐다. 이는 파키스탄 농업대학에 국내 친환경농업을 비롯한 농업의 기초 공사를 다져주기 위함이다. 특히 파키스탄의 기후적 특성에 따른 겨울철과 여름철 과채류의 지속적 공급을 위해 비닐하우스 건립과 재배 기술 지도를 전수했다. 정진영 박사의 현장 방문기를 연재해 본다.

2월 4일 월 9시 35분. Thai항공 TG659편으로 방콕을 경유해 다시 TG349편으로 갈아타고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Islamabad)에 도착했다. 파키스탄을 가지 전에 국내에서 구입한 비닐제품과 비닐하우스용 자재들을 싣고 가던 차에 우리 일행은 항공운임이 3인에게 15kg씩 공제 받고도 70kg 초과되어 약 270만원의 항공료를 더 지불해야만 했다. 예상치 못한 금액을 지불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 같은 자재를 국내에서 가지고 들어간 것은 잘한 일이다. 개발도상국인 파키스탄에 농업을 전수하러 가면서 현지의 낙후된 제품을 사용했다가 오히려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라오스에서 시험 재배했던 경험으로 미뤄보면 현지의 제품들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비닐이 너덜거리며 찢어졌다. 그 때의 시행착오를 다시 겪고 싶지 않아 이왕 자원 봉사를 떠나는 김에 튼튼하고 안전한 국내 제품으로 이곳 파키스탄에 한국의 농업을 전수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비용의 부담을 안고 도착한 파키스탄이지만 그래도 낯선 이곳에 농업이라는 희망을 전수해 줄 수 있다는 자부심에 마음 한 켠에는 뿌듯함이 밀려 왔다.

둘째 날. 오늘은 파키스탄 이슬람교의 공휴일이라 휴식을 취하며 농장 인부들에게 전할 기술 내용을 다시 한번 검토해 보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비가 오후 늦게까지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면서 집밖으로 외출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셋째 날. KOICA 파키스탄 지소의 전준호 소장과 함께 최중주 파키스탄 대사를 면담했다. 최 대사는 “파키스탄은 쌀·밀·우유 생산량이 세계 선두지만 비과학적이라 유실율이 20%나 된다”며 “이에 따라 농산업 과학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일러줬다. 또 과채류의 고급화를 위해 품질향상과 생산량 증대를 위한 기술협력이 중요하다며 이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한 달여간의 짧은 기간에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지만 맡은 부분만큼은 최선을 다해 가르쳐야겠다고 순간 다짐하게 됐다. 파키스탄에 대한 농업 이야기를 듣고 나누면서 나는 우리나라 가공산업의 원료생산 기지화를 이곳 파키스탄과 연결해 생각해 보았다. 여러모로 타국에 우리나라 농업 기술을 전수해 주게 되면 향후 우리 농업과 식량 자원에도 분명 부메랑이 되어 순풍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넷째 날. AAUR의 담당자인 Ms. Syeda Irum Umar씨와 향후 협력 사항에 대해 논의했다. 우선 농업 트레이닝 센터 건립에 따른 기본 설계 개요와 시설별 기자재 소요량, 교육 참여자(남녀별 및 인원), 교육 프로그램 설계시 주요사업별 반영 비율 등을 논의했다. 이후 대학 팀 중 과채류 전공자와 협력 협의 강화 후 교육과 현장실습, 농가 방문 등 절차를 수립했다. 오후에는 토마토 전문가로 지정된 직원과 1주일 커리큘럼과 교재를 확보해 미리 현지 농업에 대한 분위기를 파악했다.

다섯째 날. 오전에는 토마토와 고추 유기재배 매뉴얼 요약본을 번역했다. 이날 부총장과 과장을 만나 면담을 했더니 자국에 유기농업의 도입과 확산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이날 파키스탄의 토양 유기물 함량에 대해 들었다. 유기물함량이 전국적으로 평균 0.5~0.8%이고 산도는 pH8인데 pH7 이하로 도저히 내릴 수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 깊은 한숨을 쉬었지만 토양 개량을 위해 한 달여간 많은 정보를 심어 주겠다고 그들을 안심 시켰다.

여섯째 날. 담당 직원인 Mr. Gaship이 비닐하우스 건립용 자재 구입을 위해 시장에 나간다고 해서 물품을 구입하는 데 따라갔다. 시장 길은 매우 좁은데 몰려드는 인파로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소형 오토바이들의 매연 배출이 심해 눈이 따갑고 눈물이 날 정도였다. 한동안 목이 칼칼하면서 고통이 가시지 않았다. 다행이도 저녁엔 전통 식당가에서 닭고기 정식으로 대접 받았다.

일곱째 날. 오전에는 학교 앞 파머스 마켓에 들러 먹을거리를 구입했다. 오후에는 농과대학 농장에 나가 토마토·쥬키니호박·고추·배추 등 작물의 작황을 살펴보았는데 모든 작물이 바이러스나 해충의 피해를 입어 정상적인 생육 상태가 되질 못했다. 이를 보면서 새 절략형 철재 비닐 하우스를 설립하고 이를 활용한 토양개량에 주력한다면 유기농업 효과를 어렵지 않게 확인 시킬 수 있겠다며 자신감을 가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