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의 기호식품 오징어를 주제로! 묵호항 개항 71주년 기념 ‘제 15회 동해시 오징어 축제’(2012. 9. 15 ~ 16)장을 찾았다. 세 번째 올라오는 태풍 ‘산바’가 얌전히 빠지기를 바라며 뻥 뚫린 영동고속도로를 밟아 동해로 향한다.
 
수산물 소비량이 우리 국민 1인당 55kg으로 전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높은데, 기후변화로 국내 어획량이 줄어 수입 수산물이 늘어났다니…. 동해안 대표 어항의 오징어 축제라~ 눈이 반짝였다고 할까. 묵호항 수변공원의 곳곳에 띄운 오색 광고풍선이 잔치 분위기를 북돋운다. 풍어제를 올리는 제단 주위로 지역주민과 관광객의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성균관유도회동해지부 어르신들이 주관하고 시장님과 시의원이 제관이 되어 동해용왕님께 올리는 풍어제의 정중한 예를 다 하는 제례의식이 인상적이다. 어업민들의 풍어와 시민안전을 바라는 간절한 기원에 나의 마음도 모았다. 선주·요식업 대표의 재배(再拜)를 끝으로 인간의 축제는 시작되었다.

다양한 공연행사가 (개막특집 공연, 자매도시 공연, 불꽃페스티벌, 묵호항 퍼포먼스, 묵호항 작은 콘서트) 축제의 양을 보여 준다면 다양한 체험행사는 축제의 질이다.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은 캐릭터비누 만들기, 모래유화 아트체험, 오징어 탁본뜨기, 우리밀 오징어과자 만들기 체험장에서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행복의 실체가 보기 좋다. 바다 사나이의 저력을 보여준 맨손 고기잡이 체험과 오징어 낚시체험은 날것을 끌어당기는 손맛이 구경꾼도 느낄 정도로 짜릿했다. 축제의 절정은 ‘추억의 묵호항 음식체험’ 앞에 100ｍ 이상 늘어선 사람띠였다. 동해시여성단체협의회에서 준비한 오징어순대와 오징어전에 새콤달콤 양념 무생채를 곁들인 음식접시를 안겨준다. 묵호항 앞바다에서 밤새 집어등을 밝히고 잡은 오징어에 갖은 비빔속을 채운 오징어순대는 고소하면서도 들큰한 깊은 맛이 있었다. 70년 세월을 지켜온 어항민의 따스한 인정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역시 입안이 즐거우니 모든 게 넉넉해 뵌다.

그 기세로 천천히 논골담길을 따라 묵호등대로 올랐다. 묵호등대는 바닷가 방파제가 아닌 마을 언덕배기 끝자락에 있었다. 꼬불꼬불 ‘담길’인데 ‘논길’이라고? 고기잡이 번창했던 시절, 아낙들이 생선을 이고지고 빠대고 다녀 논길 같은 진흙탕길이라 논골길로 불렀다니 논골담길은 고단했던 삶의 생생한 화석이구나! 가파르고 좁은 골목담장에 그린 그림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외형상으로 쇄락한 산동네를 찾은 탐방객에게 소박한 벽화의 면면은 따스한 위안을 주었다.
다닥다닥 붙은 성냥갑집. 금방이라도 내려앉을듯한 슬레이트지붕 담벼락엔 보따리를 머리에 인 아낙네, 손수레 끄는 아저씨가 활짝 웃고 있다. 벋어나간 호박넝쿨 줄기에 익어 뒹구는 누런 호박. 다리는 뻐걱거리는데 마음은 참 편했다. 줄창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이제 비우고, 비우란다. 화려한 어항의 불빛이 스러진 이 자리에 다시 되살린 불꽃은 은은한 ‘힐링’으로 나를 다독여 준다.

삐뚤빼뚤 경사진 논골담길을 올라 묵호등대해양문화공간(해발 67ｍ) 안쪽 등대에 도착했다. 바다만을 오롯이 비추는 바닷가 외로운 등대가 아니다. 골목길 오가는 시내버스, 강아지와 뛰어다니는 마을 아이들, 동네 어르신도 나그네도 봐 줄 것 같은 친근함. 등대와 등대가 지켜주는 동해바다 어항의 풍광이 정겹다. 내려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카페와 빨강 출렁다리가 올라온 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통재래시장 좌판에서 오징어와 고등어를 샀다. 또 가자미와 마른 오징어도 샀다. 더 얹어준 마른 오징어를 씹으며 축제장을 나섰다. 다행히 ‘산바’도 수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