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아사(農夫餓死), 침궐종자(枕厥種子)’란 말이 있다.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종자는 생명과 같아 굶어 죽더라도 씨앗은 먹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한 우리 속담이다. 종자는 ‘오래된 미래’라는 말처럼 수천 년 전부터 농민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왔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토종씨앗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농민의 손에 다시 토종종자를 돌려주고, 공공화한 농지를 기반으로 씨앗살림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이가 바로 한살림우리씨앗농장 안상희 농부이다.

1농부_우리씨앗농장 안상희

1박사_국립농업과학원 유기농업과 박광래

이경민 기자

한살림 제2의 운동으로 토종씨앗을 선택

작지만 야무지고, 뿌리가 곧은 대나무를 보는 것 같다. 한살림우리씨앗농장에서 만난 안상희 농부는 평생을 유기농업에, 한살림운동에 바친 1세대 유기농업인이자, 우리 땅에서 나온 토종종자를 지키는 우직한 농부이다.

“1980년부터 한살림생산자로 활동을 하면서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제2의 한살림운동을 고민했습니다. 괴산 소수면에 위치한 농장부지를 중심으로 한살림토종씨앗나눔 사업을 제안해 2014년 2월 우리씨앗농장으로 명명했습니다. 10월에는 한살림우리씨앗농장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였으며, 2017년에 농업회사법인 우리씨앗살림주식회사를 설립해 한살림 소비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법인을 갖췄습니다.”

안상희 농부는 사라져가는 우리 씨앗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각종 토종 씨앗을 재배하고 채종, 보존, 보급, 확산시키며 종자주권을 확보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한살림생산자연합회 등의 지원금과 지역 한살림의 출자와 후원금을 바탕으로 각종 토종 종자를 재배해 조합원들과의 씨앗나눔 및 간담회 등 다양한 도농교류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미래세대의 아이들에게 토종 씨앗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리는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적응한 토종종자

“토종종자는 그 지역에서 토양이나 기후 환경에 적응을 잘 했습니다. 개량종보다 훨씬 좋다, 못하다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농민들이 개량종이나 보급종을 찾는 것은 생산되는 수량이 작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수량만 따지만 보급종이 우수하지만, 왜 토종종자를 재배할까요?”

안 농부는 종자의 우수성 보다는 자연과 가까운 농사에 적합한 것이 바로 토종종자라 강조했다. 보급종 벼 품종에는 까락이 거의 없어졌지만, 토종벼 종자는 보리나 밀처럼 까락이 붙어 있다. 끝이 뾰족한 까락은 자체적으로 충과 새의 피해를 막고, 수분 조절 기능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가뭄 같이 물이 부족한 시기에 더 잘 버틸 수 있는 것이다.

“토종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대부분 화학비료나 농약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토종 고추의 경우만 보더라도 관행재배 농민은 10일에 한 번씩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만, 토종 고추는 거의 방제를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따지만 수확량이 적더라도 농민이 가져가는 비용은 비슷합니다. 자연에 가까운 방식의 재배에는 토종종자가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200개가 넘는 토종종자를 유지

2014년부터 토종종자를 210여 가지 토종 씨앗을 채종, 보급하고 있는 우리씨앗농장은 토종농산물을 생산, 공급함으로써 토종종자 살리기와 종자자립기반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품종별로 따져보면 210가지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벼가 가장 많으며 우보농장 씨앗도서관과 교류해 현재는 38품목의 토종벼종자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물론 매년 모든 품종을 다 심어서 채종하지는 못하지만 몇 년에 한 번씩 재배하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많이 필요로 하는 품종은 매년 심고, 나머지는 2~3년에 한 가지 정도 심고 있습니다.”

일 년에 안 농부가 재배하는 품종은 대략 60~70가지이다. 품종의 균일성을 위해 서로 교잡이 안되는 품목을 심고, 옥수수처럼 교잡이 잘 되는 것들은 일년에 한 가지 품종만 식재한다. 호박의 경우 교잡이 잘되기 때문에 벌이나 나비같이 수정을 하는 곤충들이 한 번에 날아가지 못하는 거리를 두고 식재를 한다.

고향집 같은 농장. 치유되는 사람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앞으로 농업에 종사하게 되면 어떤 농장을 만들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농장을 만들고자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농장이 아름다운 농장일까요? 눈으로만 봐서 아름다운 농장이 아니라 사람살기 아름다운 농장, 토종종자를 통해 아름다운 농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또한 내가 일하는 곳이 나의 놀이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입니다.”

안 농부는 우리씨앗농장을 찾는 누구라도 사이 좋게, 즐거운 놀이터처럼 농사와 나눔을 통해 아름다운 농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우리씨앗농장은 괴산군이 지정한 치유농장이다. 특별히 치유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지만, 곳곳에 심겨져 있는 작은 꽃들과 풀들, 토종종자를 관찰하는 이들이 이 곳에서 힐링을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먹거리 교육을~

우리씨앗농장은 농업살림을 체험하고 농업살림의 중요성과 의미를 체감할 수 있는 배움터이자, 귀농·귀산촌을 꿈꾸는 사람들과 청년들을 위한 귀농 실습농장이다. 또한 생산자 방문, 손모내기, 공동수확 등 소비자와 생산자, 도시와 농촌, 사람과 사람을 이어가는 이웃살림의 가치를 실현하는 문화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먹거리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생산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큰 교육이라 생각합니다. 올해 같은 경우에도 5가지 종류의 토종종자를 이용한 키트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보급하고 있습니다.”

우리씨앗농장에서는 먹거리 교육을 비롯해 생산된 토종농산물을 이용한 꾸러미까지 판매하고 있다. 직접 생산한 고추나 마늘, 배추도 보내지고, 봄철에는 나물 종류를 준비해 말려서 겨울 꾸러미에 넣어주기도 한다.

“농사는 이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농사는 행하는 것입니다. 몸으로, 경험을 토대로, 계속해서 하나 씩 쌓아가는 것이 농사입니다. 소비자는 생산자를 믿고, 생산자는 소비자를 가족같이 생각하며 서로를 책임져 주는 약속을 지키는 것. 이것이 농사고, 친환경농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