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창군 거창읍 가지리. 언덕 위로 오르다 보면 블랙베리, 산딸기, 복분자, 블루베리 밭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아름다운 농가 레스토랑과 체험장이 자리하고 있다. 레스토랑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레스토랑 뒤에는 주위 환경과 잘 어우러진 농가 펜션이 눈을 사로잡는다. 말 그대로 힐링이 되는 유기농 공간이 바로 ‘이수미 팜베리’ 농장이다. 올해 두 번째 1박사 1농부의 주인공 이수미 농부를 찾았다.
1박사_국립농업과학원 유기농업과 박광래·공민재 박사
•1농부_이수미
•이경민 기자
피보다 붉은 베리색에 반하다
멋스러운 페도라 모자와 양갈래 머리, 세련된 도시여성 같은 이수미 농부는 벌써 귀농 30년차이다. 서울에서 의상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던 젊은 여성은 1992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 충격으로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고향인 거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서울 생활을 접고 돌아와 보니 농업·농촌을 바라보는 시선은 굉장히 부정적이었습니다. 노동이 투입되어 먹거리를 생산하는 모습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 때 의상이 아니라 노동으로 무언가를 이루는 삶, 당당한 여성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해서 농업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22살의 청년 농부의 선택은 ‘양계’였다. 퇴직금을 쏟아부어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양계장을 만들기 시작해 6,500마리의 산란계 사업을 시작했다. 18년 동안 결혼도 하고 3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말 그대로 죽도록 노력해서 4만 수까지 양계장을 확대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다 보니 항상 아이들에게 “엄마 옆에 조금 떨어져 있어”라는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건강한 산란계로 소비자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농사를 시작했지만, 정작 제 아이들에게는 건강한 먹거리를 주지 못하고 돈으로 먹거리를 사 먹게 했습니다. 과자나 사탕을 먹고 온통 입이 파랗게, 보라색이 된 아이들을 보면서 이건 뭔가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날 전북 고창에서 지인이 선물한 복분자를 보고 이수미 농부의 농사 방향은 확 바뀌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맨손으로 복분자를 쥐었을 때 피보다 더 진한 빨간 색의 복분자를 보고 “자연이 만들어 낸 이 아름다운 색, 이 아름다운 먹거리를 내가 만들어서 나눠야겠다”라고 결심한 것이다. 양계장을 확장하기 위해 준비한 부지를 그는 과감하게 베리농장으로 바꿨다. ‘이수미팜베리’농장은 그렇게 시작이 됐다.
유기농기술 포인트 1 유기농 베리류에 가능성을 보다
블랙베리 2,000평, 복분자 1,000평, 산딸기 2,000평, 블루베리 1,800평 등 다양한 베리류를 재배하고 있는 이수미팜베리 농장. 이 농부는 유기농 베리류의 가능성을 크게 봤다. “맛과 기능성, 소비 편리성 등을 골고루 갖춘 베리류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유기농 매출 증가 폭이 가장 큰 품목은 포장 샐러드(15.4%), 블루베리, 산딸기, 블랙베리 등의 베리류(12.2%), 사과(11.1%) 순으로 조사됐습니다.
건강하고 신선한 유기농 베리는 더욱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이수미팜 베리에서 재배하는 베리는 최소한의 간섭을 받고 자라고 있다. 별도의 병해충 방제는 최소한으로 하고 있으며, 병이 오더라도 선별해 온전한 원물만을 수확하고 있다. 적응력이 강한 블랙베리는 물관리 정도만 해주고 있으며, 병충해에 약한 산딸기는 2~3년마다 묘를 갱신해주고 있다.
토양관리의 경우에는 초생재배를 활용해 풀을 어느 정도 키워서 다시 토양에 환원해 주는 방법을 사용하며, 부족한 영양분은 친환경 축사에서 나온 축분을 부산물, EM균, 부엽토 등을 함께 섞어 충분히 발효시킨 후에 사용하고 있다.
유기농기술 포인트 2 소비자의 요구에 맞춘 가공
쌍떡잎 장미과의 나무 딸기과에 속하는 블랙베리는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에서 널리 분포하는 식물이다. 단맛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식감으로 생으로 먹거나 주스, 잼, 젤리 등 다양한 가공식품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널리 퍼지지 않았다.
“블랙베리에 대한 연구를 가장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맛도 영양성분도 어느 과일 못지않은 블랙베리가 가장 판매가 되지 않았습니다. 점점 냉장고에만 쌓여가는 블랙베리를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블랙베리의 영양성분 분석을 해보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블랙베리에는 안토시아닌, 엘 레그산, 탄닌, 케르시킨, 갈산, 카테킨 등의 풍부한 항산화 성분을 함유하고 있었으며, 칼륨, 망간, 구리,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 또한 풍부했다. 다양한 장점을 가진 블랙베리지만 씨가 딱딱하고 이물감이 낀다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이 농부는 가공을 생각하게 됐다. 과피보다 씨 자체에 영양성분이 많은 블랙베리의 영양성분을 온전히 다 섭취하기 위해 3년 동안 일본을 비롯해 서울에 있는 기계업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3년의 연구 끝에 맷돌방식의 가공기술을 개발해 현재는 이물감이 없고 영양성분이 온전히 들어있는 다양한 가공품을 생산하게 되었다. 블랙베리와 아로니아, 복분자 등의 베리류는 현재 잼과 젤라또, 농가 레스토랑의 다양한 소스로 활용되어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유기농기술 포인트 3 찾아오는 소비자를 만든다
2013년 블랙베리를 가공해 백화점에 납품하던 이 농부는 소비자들의 차가운 외면을 받게 된다.“그 당시 TV에서 농가들이 가공한청이나 엑기스 종류가 영양성분 하나 없는 ‘설탕물’이라는 뉴스가 방송됐습니다. 여름날 우리 농부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정성스레 만든 오미자청, 복분자청 등이 못 팔 물건처럼 취급되는 것을 보고 소비자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공간을 찾아오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장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찾아와 농업·농촌을 느끼고, 건강한 먹거리를 체험하고, 즐기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고민한 이 농부는 레스토랑과 체험장, 숙박시설까지 준비했다. 인구 6만의 작은 고장인 거창군에서 과연 사람들이 찾아올까 하는 고민을 했지만 농가레스토랑과 체험장, 펜션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지난해에만 10만명이 찾아온 이수미팜베리는 지역의 명소를 넘어 전국에서 소비자들이 찾아오는 힐링의 공간이 되었다.
“농촌 공간의 매력은 자연입니다. 레스토랑 위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농장의 모습은 이 곳을 찾아오는 소비자들에게 우리 농촌공간이 매력적인 곳이다라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쉬고 즐기면서 유기농산물을 소비하는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농장을 정원화해 힐링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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