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농업자체는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친환경 농업이 유지 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소비가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친환경 농산물의 소비를 위해 친환경 농민이 되어버린 농부가 있다. 지역의 친환경 협회를 만들어내고,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며 로컬푸드까지 활성화시키는데 앞장서는 행동파 소비자. 이제는 친환경 농민인 김주희 농부를 소개한다.
| 손무경 기자
한국이 사라진 한국인의 밥상
2022년과 2023년 한국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중 하나인 ‘식량안보’. 이 단어를 못 들어본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전 세계의 충격을 안겼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려를 넘어 다른여러 국가들에게 예상치 못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세계의 곡물창고라는 우크라이나의 혼돈은 세계의밀 가격을 매일 같이 높이고 있다. 2022년 5월에는 밀 생산 2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인도가 밀 수출 전면 금지를 시행하며 식량안보 위기를 더욱 키우고 있다. 2020년 기준 곡물자급률이 20.2%에머무른 대한민국에겐 상당히 암울한 전망임은 확실하다.
밀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데 밀의 자급률은 무려 0.8%로 99.2%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국제정서의 불안이 만들어낸 요동치는 밀 가격은 한국 국민들의 식탁물가를 흔들고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밀 소비는 결코 적지 않은데 자급률은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서구화된 식단은 소비층의 빵 소비를 늘렸으며, 라면의 왕국답게 면을 사랑하고 ‘국수 먹게 해준다’는 말이 결혼한다는 말일 정도로 밀가루의 소비가 상당함에도 국산밀은 현재 국민 1인당 0.5kg을 소비할 수 있을 정도로 수량이 처참하다. 이러한 사태에 정부는 밀 자급률을 2025년까지 5%로 늘릴 것을 약속한 상태다.
친환경의 마지막 파수꾼들
신기하게도 친환경은 어떤 것이던 어디 던 찾아보면 꼭 존재한다. 미약한 신호로 겨우 연명 중인 한국 친환경 농업의 감소세에 고마운 존재들이다. 밀도 마찬가지다. 전북 임실의 김주희 농부가 소중한 한국 유기농 밀을 지키고 있다. “요번 겨울처럼 기온차가 크면 한해 농사가 어려워져요, 겨울에는 건조하고 한랭한 기후 속에 작물이 잘 건조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뿌리가 썩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가을에 파종하는 가을밀을 심어둔 김주희 농부의 밭에는 푸릇푸릇한 겨울임에도 밀싹이 돋아나 있었다. 눈이 오면 그 푸르름이 더욱 돋보인다는 김 농부의 말에 그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나 현재는 겨울임에도 매우 온화한 날씨로 인해 눈이 녹아 밭에 물이 고이기 시작하고, 평년대비 높은 강우량으로 한지형 마늘이나 양파 등 겨울 작물이 견디기에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수분이 많아진 땅은 겨우내 추운한파가 다시 찾아오면 얼기 쉬운 조건이 되어 작물에 냉해를 입힐 가능성도 높아진다. 김주희 농부의 경우, 노지의 밭에서 재배하고 자연농에 가까운 농사법 때문에 열 십(十)자로 가운데 물길을 내어 물을 빼주는 기본적인 작업을 해준다고 한다.
약식동원. 한식의 중심 철학인 ‘약식동원’은 약과 음식은 그 근본이 동일하다는 뜻이다. 김주희 농부는 그 뜻 그대로 깨끗하고 건강한 먹거리에서 건강한 몸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여의도에서 ‘약식동원’이라는 이름의 유기농 식당 대표였기도 한 김주희 농부는 깨끗하고 안전한 농산물에서 나오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아이를 키우며 직접 경험했다고 말했다.
“아이가 굉장히 현대질병에 예민했어요. 약간의 가공품이나 농약에만 노출되어도 온몸이 반응할 정도였으니까요”라며 김주희 농부는 과거 유기농 식품만을 고집했던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일일이 농약이 없는 제품을 찾아가며 방부제 및 농약처리 과정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후에 여의도에 약식동원이라는 유기농식당을 개업해 유기농 농산물을 활용한 식탁을 계속 연구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3년 동안 김포 로컬푸드매장으로 장을 보러 다녔다는 김주희 농부. 그녀는 완주와 양평 로컬푸드매장에서 야채를 배송받기도 하였으나, 유기농의 특성상 장거리 배송은 품질에 많은 문제가 생겨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점점 유기농제품을 구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해 직접 생산지로 이동하기로 다짐했다.
임실에 귀농한 김주희 농부는 생각보다 다른 현실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 임실에는 친환경 협회라고 할 만한 단체가 없었으며, 이전에 있던 협회는 이미 3년간 회의도 하지 않아 협회 활동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로컬푸드에 나오는 친환경 제품이 넉넉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로컬푸드 매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직접 유기농 농사에 뛰어들었다.
원래 현미밥을 주로 했었던 김주희 농부가 통밀을 선택한건 다름 아닌 ‘영양’ 때문이었다. 일명곡물의 끝판왕이라는 통밀은 단백질함량을 포함해 영양성분이 훌륭하다. 농사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김농부는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되면서 비로소 친환경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두달 넘게 이어진 장마에 첫 농사의 수확물을 말리지 못해 부진했던 판매는 이듬해 관행농과 친환경의 재배법의 차이를 실감하며 이어졌다. 이후 경남산청의 태
평농에서 친환경 농법을 배워온 김주희 농부는 자연농에 가까운 친환경농업으로 소중한 수확물을 얻었다.
200평에 10kg의 종자를 뿌리는 기존 농업과 달리 100평에 10kg의 종자를 뿌리는 방법으로 파종량을 두 배로 높여 밀식을 통해 잡초의 초세를 억제하는것이 비법이라고 말했다. 10월에 파종해 겨우내 싹을 틔우는 가을밀은 병충해가 잘 없는 작물이어서 잡초관리만 가능하다면 충분히 유기농이 가능하다.
“5월부터 농사하면 잡초의 초세를 잡을 수 없어서 백전백패에요. 하지만, 10월에 밀식해서 농사를 시작하면 백전백승이죠”라며 김주희 농부는 아무것도 안해도 관행농의 30~50% 정도의 수확량을 낼 수 있다며 밀식으로 수확이 안 된 밀들은 다시 영양분으로써 토양에 되돌아가 비료 없이도 지력을 많이 손실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이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전에는 한계가 없다
“언니, 요즘 누가 밥을 해먹어!” 김주희 농부가 첫해에 겨우 수확한 통밀을 통밀쌀로 팔았을 때 지인으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서구화된 식사와 식수인원의 감소로 단골손님 한명이 1년에 사가는 통밀쌀의 양은 기껏해야 3kg 이었다. 밀가루도 암담하기는 마찬가지. 유기농 국내산 밀가루는 방부제와 같은 화학약품이 전혀 없다보니 부패에 취약해 제과와 베이커리에서 사용을 꺼려했다고 한다.
이에 생각해낸 것이 바로 통밀뻥튀기. 크라운제과의 죠리퐁을 생각하면 쉽다. 그러나 시중제품과 달리 껍질을 벗기지 않고 영양분을 그대로 품은 채 튀겨내는 것은 어려웠고 그렇게 3년간의 노력 끝에 김주희 농부는 현재의 유기농 통밀뻥튀기를 만들어냈다고말했다.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생산자 에서 식품제조까지 쉼 없이 달려온 그녀의 다음 도전은 로컬푸드 매장이다. 앞으로 임실에 그녀가 몰고 올 새바람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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