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남지 않은 동지를 기다리며 ‘이제부터는 해가 길어지겠구나’ 생각을 하니 왠지 설렌다. 이제 해가 길어지면 그동안 춥다고 움츠리며 밀어놓았던 일들을 차근차근 해나가야겠다.
요즘 관공서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전염병 예방을 위해 손 씻기를 생활화하자는 문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손을 소독하여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미생물을 살균처리 하여 병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자는 취지이다. 그러나 병이 발생된 실제 원인은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병 발생이 된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물론 미생물이 병의 기본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병원성 미생물이 우리 몸에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우리 몸의 면역력이 약해져있을 때에 병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는 농업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작물을 경작하거나 가축을 사육하는 농민에게는 이러한 원리들을 체험해보았으리라 생각된다.
고려바이오(주) 홍석일 이사(이학박사) cobio97@naver.com

미생물보다 면역력 저하를 먼저 살펴라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고추나 오이 등에 탄저병이 발생을 하면 대개 농민들은 ‘탄저병을 일으키는 곰팡이 균이 날아와서 고추에 병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맞다면 우리 농가를 포함한 주위의 많은 농가들에서 모두 탄저병이 발생해야 한다. 왜냐하면 고추탄저병 곰팡이균이 특정 농장에만 날아 들어온 것이 아니라 온 동네를 날아다니며 농장마다 다 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온 동네가 한가지병으로 만연을 하는 경우는 드물며 비록 같은 농장 내에서도 탄저병이 발생한 곳이 있는가 하면 탄저병 발생이 덜한 곳도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병원균이 날아오면 병이 발생된다고 생각되어 외부인이 농장에 함부로 출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상당히 민감하게 생각해왔는데 말이다.
식물에 병이 발생되는 원인은 미생물도 물론 한 몫을 하지만 식물의 면역력이 저하되었기에 미생물의 식물 내 침입을 방어하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면역력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식물들도 외부의 여러 가지 환경과 병원미생물로부터 자기 몸을 방어하기 위해 지니고 있는 최소한의 기작이다. 오늘날과 같이 각종 질병이 만연하게 된 원인은 작물에게 자연이 아닌 인위적인 환경 조절과 화학적 양분공급에 따른 급격한 자기방어 시스템의 붕괴에 기인된 것으로 생각된다.
면역체계를 알기 위해 양계 질병 관련분야를 연구했던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싶어 한 사례를 설명한다.
Salmonella gallinarum(살모넬라 갈리나룸)은 세균으로서 닭에게 가금티푸스라고 하는 호흡기 전염병을 발생시키는 아주 무서운 병원균이다. 이 세균이 농장에 감염되면 1주일정도 잠복기를 거친 후 결국에는 닭을 죽게 만드는데 이렇게 죽은 닭의 간은 일반 간의 두 배 크기로 부어있는 것이 관찰된다. 아직까지 특별한 처방은 없고 항생제를 주사해 체내 잠복한 세균을 죽이거나 병이 발생되기 전에 백신을 주사해 가금티푸스에 대한 면역력을 지니게 한다. 이 병의 직접적인 발생원인은 무엇보다도 병원균이 첫 번째이다. 닭이 이 세균에 오염된 먹이나 사료를 먹거나 호흡기로 접촉하면 병이 발생된다. 닭은 모이를 먹으면 삼켜진 먹이가 식도를 통해 위(닭의 위는 근위라고 하는데 우리가 포장마차에서 안주로 즐겨 먹던 똥집이다.)로 전달되고 위에서 어느 정도 소화된 먹이는 십이지장으로 넘어가고 소장, 대장, 항문으로 전달되어 결국에는 배설물로 배출이 된다. 일단 닭의 체내로 들어간 세균은 대장까지 이동되어 정착을 하다가 대장의 상피세포(곱창 안쪽 부위)안으로 침투, 결국에는 혈관에까지 스며들어가 온몸에 퍼지게 된다. 이후 혈액을 통해 간에까지 침투해 간을 퉁퉁 붓게 만드는데 티푸스에 걸려 죽은 닭을 해부해 보면 일반 건강한 닭에 비해 간이 2배 이상 커져있다. 원래 간은 어떠한 미생물도 서식하면 안되는 기관인데 티푸스에 걸린 부은 간을 채취하여 미생물을 분석해 보면 간 세포내에 기생하고 있는 살모넬라 미생물을 쉽게 분리해 낼 수 있었다.

면역력은 환경이 만든다
희한하게도 농장내 계사(케이지)속에서 티푸스에 걸려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닭을 계사에서 꺼내어 밖에 던져놓으면 며칠 후에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지렁이나 땅강아지를 잡아 먹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지만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일들에 대한 원인을 규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동안 닭들이 계사라고 하는 인위적인 시설물에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왔을까? 목만 움직일 수 있도록 비좁게 설계된 케이지안에는 닭이 평균 3마리가 들어있는데 움직이지도 못하고 목만 내어놓고 사료와 물을 먹으며 알만 낳으며 살아간다. 공기환경은 닭들이 싸놓은 똥으로 지독한 암모니아 가스로 악취가 가득하지만 환기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환기를 시키면 닭장 내 온도가 내려가고 닭이 알을 잘 낳을 수 있도록 따뜻한 온도로 다시 닭장 온도를 올려야 하는데, 그러한 모든 것들이 돈(연료)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환경에 우리 사람을 데려다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미쳐버릴 것이다. 그러한 곳에서 자라는 닭의 면역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병원균이 침투하면 백발백중 발병된다.
그런데 항상 그늘지고 독한 똥냄새와 탁한 먼지속에서 인위적인 전등으로 밤과 낮이 구분되지 않는 환경에서 계란을 생산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닭을 밖에 내놓아 해를 보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하니 몸이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햇빛만 보아도 면역력이 돌아와 몸 안에 들어와 있는 병균을 밀어내는 것이다. 영양면에서 본다면 닭장 안에 있을 때가 훨씬 좋다. 영양소가 골고루 배합된 사료를 매 끼니마다 공급해주고 깨끗한 물도 항상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사에서 나가면 먹이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지렁이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부지런히 찾아다녀야 한다. 모래도 부지런히 먹어서 근위를 채워야 한다. 그렇게 근위에 채워진 모래는 나중에 들어온 지렁이와 같은 먹이를 으깨는 방편으로 사용된다. 원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닭똥집이라고 하는 것은 근위라고 하는 닭의 소화기관으로 우리 사람의 위(胃: stomach)와 같은 것이다.
닭의 근위에는 모래가 가득 들어있어서 모래주머니라고도 하는데 이 모래주머니의 역할은 닭이 먹은 온갖 먹이를 으깨는 역할을 한다. 즉 모래가 들어있는 주머니속에 지렁이를 집어넣고 손으로 모래주머니를 자꾸 문질러주면 그 안에 들어있는 지렁이는 거친 모래사이에서 으깨어져 분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분해가 된 지렁이는 근위를 통과해 십이지장으로 넘어가고 십이지장에서 분비된 효소에 의해 아미노산과 같은 물질로 변한다. 아미노산은 소장으로 넘어가 소장의 벽에 흡수가 되어 닭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영양분이 된다. 이렇게 양분을 다 빨아먹고 난 찌꺼기는 대장으로 넘어가고 대장에서는 수분을 흡수한 후 배설물로 외부에 배출된다. 그러기에 근위는 모래를 뭉개야 하고 그러다 보니 근육이 발달되어 우리가 먹기에 아주 좋도록 육질이 쫄깃쫄깃 해지는 것이다.

미생물은 모든 생물의 직접적인 발병원인이 아니다!
양계농가에서는 티푸스 병이 발생하면 세균병이기 때문에 항생제를 처방을 한다. 닭장안에 들어있는 닭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항생제 주사를 놓는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항생제 역가 테스트(여러가지 항생제중에 어떤 항생제가 세균을 잘 죽이는지 실험하는 것)를 하다보면 A항생제가 효과가 좋을 때가 있고 어떤 농장은 B항생제가 잘 들을 때가 있다. 똑 같은 세균인데 적용되는 항생제가 다른 것이다. 즉 세균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알리 없는 농가에서는 첫 번째 주사한 항생제의 효과가 없어서 다른 항생제를 사다가 두 번씩 주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것은 간단한 항생제 역가 테스트를 통해서 효과 있는 항생제를 선발해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7~8년 전쯤에 연구소에서 닭장을 만들어 닭을 사육한 적이 있다. 300마리정도를 키웠는데 노란 병아리들이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병아리들은 사료도 조금씩 먹고 물도 얌전히 먹어 병아리들을 보고 있으면 평화로움 같은 느낌도 들곤 했다. 그렇게 20일정도 지나자 그렇게 귀엽던 병아리들이 어엿한 중병아리가 됐는데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똥을 아무곳이나 싸대고, 먹는 물통에 더러운 발로 들어가 물을 자주 갈아주어야 했다. 똥냄새는 어찌나 지독하던지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 이 실험의 목적은 닭에게 유익한 미생물(주로 유산균)을 사료와 함께 급이하다가 병원균인 살모넬라 세균을 억지로 급이한 후 병을 발생시키고 그 후에 미생물 생균제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그렇게 닭 사료를 부지런히 사다가 닭을 사육하다 병원균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직접 키우던 닭들에게 실험하기 위해서라지만 독한 병원균을 먹이려는 기분이 좀 껄끄러웠지만 한 마리 한 마리 붙잡아 입을 벌리고 실험실에서 갓 배양되어 나온 신선한(?) 병원균을 주둥이에 밀어 넣고 생균제를 사료와 함께 급이해 온 닭들과 일반 사료만을 먹인 닭들의 발병도 차이를 관찰했다.
5~7일 후에는 티푸스가 발생이 되어 닭들이 여기저기서 죽어나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죽을 생각은 안하고 보약을 먹인것 마냥 여기 저기 날아다니면서 먼지만 일으키고 똥만 잔뜩 싸대는 것이 아닌가! 병원균이 잘 못 된 것 같아 다시 세균을 배양하여 2차로 접종하였으나 마찬가지로 병 발생이 되지는 않았다. 나중에 다른 바이러스가 감염이 되어 결국에는 절반의 닭들이 죽어나가고 나머지는 인근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일이 생각이 난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을 관찰하면서 느낀 것이 병원성 미생물이 병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